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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약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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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약용
정약용, 백성을 위한 세상을 꿈꾸다
실학의 세계에 눈을 뜨다
한강을 건너는 문제를 해결하다
새로운 첨단 도시 수원 화성을 설계하다
거중기를 사용하여 백성들의 수고를 덜다
천주교 문제로 시련을 겪다
유배지에서 학문의 꽃을 피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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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약용, 백성을 위한 세상을 꿈꾸다
수원화성박물관(경기 수원시)“자네, 요즘 수원 화성을 짓는데서 일한다고 했지? 힘들겠구먼. 이번엔 또 언제나 다 지을지…”“아닐세. 예전보다 그리 힘들지 않다네. 오히려 난 요즘 일하는 게 즐겁다네. 이게 다 어느 젊은 학자가 만든 거중기라는 기구 덕분이네. 한번 구경 오게나.”수원 화성은 어떻게 지었을까요? 거중기는 화성을 건설하는데 어떤 도움이 되었을까요? 거중기를 발명한 젊은 학자는 누구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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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7
08-30
6
실학의 세계에 눈을 뜨다
아버지가 벼슬길에 오르면서 정약용의 집은 한양으로 이사하게 되었어요. 정약용은 한양에 살면서 여러 사람과 만나게 되었고 학문과 식견의 폭도 넓어졌지요. 정약용은 누나의 남편이 되는 이승훈의 소개로 이가환이라는 큰 학자를 만났어요.“유학은 지금까지 이론만을 따지고 있네. 백성의 삶에 도움을 주지 못하니 어찌 올바른 학문이라 할 수 있겠는가?”그리고는 이가환은 이익의 『성호사설』을 건네주었어요. 정약용은 그 책을 열심히 읽었어요. 그 책에 담겨 있는 내용은 그동안 공부했던 것과는 전혀 달랐어요.학문은 현실 생활에 실질적인 이로움을 줄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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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
08-30
5
한강을 건너는 문제를 해결하다
“이제부터 매년 현륭원을 참배하려 하오.”“전하, 한강을 건너기가 쉽지 않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한꺼번에 한강을 건너려면 수십 척의 배가 필요합니다.”정조는 고민에 빠졌어요. 그때 떠오르는 얼굴이 있었어요.“가서 정약용을 불러 오시오.”정약용은 학식이 풍부할 뿐 아니라 일찍이 서학을 공부해 과학 기술 분야에도 뛰어난 재능을 보였기 때문이었어요.“전하, 한강에 배를 이용해서 다리를 놓는 것입니다. 그러면 많은 인원이 이동하기 편할 것입니다. 필요할 때마다 설치하면 시간과 돈도 절약할 수 있습니다.”“배다리라? 그거 좋은 생각이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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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
08-30
4
새로운 첨단 도시 수원 화성을 설계하다
정조는 수원에 새로운 도시를 건설하고자 하였어요. 이곳을 제2의 도읍지로 삼아 자신의 꿈을 펼치고자 하였지요.“수원에 새로운 도시를 건설하려고 하네. 그대가 이 중차대한 일을 맡아서 해 주게.”정약용은 화성 설계라는 중요한 임무를 맡았어요. 지식이 풍부하고 새로운 생각을 가진 정약용은 화성 설계의 적임자였지요.우선 수원은 사방이 확 트여 있어 혹시 모를 적의 공격으로부터 도시와 백성들을 안전하게 보호할 성이 필요했어요.‘흙과 돌을 쌓아서 만든 기존의 성들은 너무 약해. 좀 더 튼튼하게 성을 쌓을 방법이 없을까? 그래. 벽돌을 사용하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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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
08-30
3
거중기를 사용하여 백성들의 수고를 덜다
정약용은 서양인 신부가 편찬한 『기기도설』이라는 책을 참고해 도르래를 이용한 거중기라는 기구를 발명하였어요.“이것은 거중기라 하옵니다. 돌같이 무거운 물건을 들어 올리는 데 사용하는 기구이옵니다.”정약용은 정조와 신하들 앞에서 거중기를 작동시켰어요. 거중기가 움직이자 여기저기서 감탄의 소리들이 터져 나왔어요.“우와, 움직인다! 정말 놀라워!”정조와 신하들은 자유자재로 돌을 운반하는 거중기에 넋을 잃고 바라보았어요. 거중기 덕분에 힘을 덜 들이고 성을 쌓을 수 있었어요.거중기를 이용한 화성 건설또 정약용은 무거운 물건을 쉽게 운반할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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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9
08-30
2
천주교 문제로 시련을 겪다
“아 이 무슨 하늘이 무너지는 소리란 말인가?”갑작스레 정조가 돌아가셨다는 소식이 들려왔어요. 정약용은 자신도 모르게 그 자리에 주저앉고 말았어요. 가슴이 무너지는 듯한 슬픔에 정약용은 그만 목메어 울었어요.정약용에게 정조는 어떤 위험에도 자신을 든든하게 보호해 준 아버지였고, 학문을 이끌어준 스승이었고, 세상에서 뜻을 나눌 수 있는 친구였어요. 자신을 알아주고 지원해 준 정조를 만나 정약용은 자신의 재능을 맘껏 펼 수 있었지요. 정조가 없는 세상은 살얼음판을 딛는 것처럼 위태로웠어요.1801년 조정은 천주교를 나라의 윤리와 가르침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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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
08-30
1
유배지에서 학문의 꽃을 피우다
1801년 11월 정약용은 유배지 강진에 도착했어요. 정약용이 머무는 곳은 비좁고 초라했지만, 정약용은 마음을 가다듬고 독서와 학문을 연구하는 일에 전념하였어요. 누구 하나 따뜻한 마음으로 들여다보는 사람이 없었고, 주위에는 그를 경계하여 감시하는 차가운 눈만이 있었어요.정약용의 유배지 강진그러다 정약용의 명성을 들은 사람들이 찾아와 스승이 되어 줄 것을 간청했어요.“나는 죄인입니다. 죄인이 무슨 가르침을 주겠소.”“그래도 부디 저희들을 제자로 거두어 주십시오.”사람들은 물러서지 않고 계속 부탁했어요. 이 같은 일이 계속 되자 언제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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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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