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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와 백성의 안녕을 기원한 종묘와 사직
종묘 정전(서울 종로구)문화재청“도성의 남쪽에 큰 불이 나 많은 집이 불타고 있다하옵니다.”“뭣이라! 돈과 식량이 있는 창고는 구하지 못하더라도, 종묘와 창덕궁은 온 힘을 다하여 구하도록 하라.”세종 때 조선의 도읍 한성(한양)에서 큰 화재가 일어났어요. 많은 백성이 목숨을 잃었고 민가 2천여 채가 불에 타 없어졌어요. 큰 화재로 인한 위기 속에서 소헌왕후는 종묘를 가장 먼저 지키라고 명령했어요.조선 왕실이 도성의 무엇보다 가장 중요하게 여긴 종묘는 어떤 곳일까요? 종묘를 중요시한 까닭은 무엇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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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
08-28
5
조선, 종묘와 사직을 세우다
고려를 멸망시키고 조선을 세운 태조 이성계는 도읍을 옮기고 싶었어요. 한반도의 가운데 한강을 품은 한성이 이성계의 눈에 쏙 들어왔는데요. 이성계는 새로운 수도를 건설하면서 종묘와 사직을 제일 먼저 만들었어요. 경복궁을 중심으로 서쪽에는 사직을, 동쪽에는 종묘를 배치했어요.『동국여도』의 도성도의 일부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사직은 땅의 신(사社)과 곡식의 신(직稷)에게 제사를 지내는 제단이에요. 농업을 국가의 근본이라고 여겼던 조선에서 땅과 곡식의 신에게 제사를 지내며 풍년을 기원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었어요. 오랜 가뭄이 들어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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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
08-28
4
사직의 제단은 왜 두 개일까?
‘하늘은 둥글고 땅은 네모나다’는 옛 사람들의 생각에 따라 땅에 제사를 지내는 사직의 제단은 네모 모양으로 만들었어요. 훗날 대한제국 시기 하늘에 제사를 지내기 위해 덕수궁 가까이에 쌓은 환구단은 둥근 모양으로 제단을 만들었죠.사직단과 환구단 모형문화재청, 서울역사박물관사직은 토지의 신에게만 제사를 지내던 곳은 아니었어요. 땅에서 자라나는 곡식의 신에게도 제사를 지냈어요. 한 곳에서 두 신을 섬겨야 하니 제단도 두 개를 만든거죠. 백성들이 평안하게 살기 위해서는 먼저 나라의 영토가 안정되고, 곡식이 잘 자라 먹을거리가 풍부해야 했어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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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
08-28
3
종묘와 사직의 길은 왜 3개로 나눠져 있을까?
종묘와 사직의 신로종묘와 사직은 유교에서 중요하게 받들었던 신들에게 제사를 지내던 신성한 장소였어요. 사람들은 제사를 지낼 때면 하늘과 땅의 신, 곡식의 신, 조상신들이 이곳으로 찾아온다고 믿었어요.신이 온다면 당연히 신이 다닐 수 있는 길도 있어야겠지요. 가운데의 신이 다니는 길(신로神路)은 다른 길과 달리 조금 높게 만들었어요. 그리고 양쪽으로 각각 왕과 세자의 길을 만들었어요. 신의 길은 왕도 함부로 밟지 않았어요. 왕과 세자는 신을 공경하는 마음으로 신의 길을 따라 발걸음을 옮겼어요.나란히 이어지던 신의 길과 왕의 길은 재궁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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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5
08-28
2
종묘 정전은 왜 길게 만들었을까?
종묘에는 여러 건물이 있지만 그중에 돌아가신 왕과 왕비의 위패를 모신 정전(正殿)이 가장 중요한 건물이에요. 수평으로 길게 뻗은 정전은 우리나라 목조 건축물로는 가장 길어요. 정전은 울긋불긋한 단청 대신에 붉은색 위주로 칠해져 있어요. 화려한 장식도 거의 사용하지 않고 단순하게 만들었지만, 길게 뻗은 정전 앞에 서면 엄숙하고 웅장한 분위기를 느낄 수 있어요.종묘 정전의 모습문화재청정전이 처음부터 길게 만들어진 것은 아니에요. 태조 이성계는 종묘 정전을 유교의 원칙에 따라 5명의 조상신을 모실 수 있게 7칸으로 만들었어요. 왕이 죽고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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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
08-28
1
역사 속 작은 이야기: 조선의 운명과 함께 한 종묘
1592년, 일본이 조선을 침략했어요. 일본군의 빠른 진격에 선조는 한성을 버리고 북쪽으로 피난을 떠났어요. 피난길에 오르면서 선조가 가장 먼저 챙긴 것은 종묘에 모셨던 선왕들의 신주(위패)였어요.선조가 피난을 가고 보름 만에 한성은 일본군이 차지하고 말았어요. 한성을 점령한 일본군은 궁궐이 모두 불타버리고 머물 곳이 마땅치 않자 종묘에 거처를 마련했어요. 그런데 이때 종묘에 머물던 일본군에게 이상한 일이 벌어졌어요. 밤마다 정전 안에서 괴이한 일이 많이 생기고, 죽는 병사들도 생겨난 것이에요.“여기가 어디길래 해괴한 일이 계속 일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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