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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관혼상제 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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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조선시대 사람들의 삶이 담긴 관혼상제
종묘 정전(서울 종로구)“뭐라고 위로를 드려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망자께서 편안히 저 세상으로 가시길 바랄 뿐입니다.”“바쁘신데 이렇게 와 주셔서 정말 고맙습니다.”누군가 돌아가셨나 봅니다. 사람은 누구나 태어나고 살다 결국에는 세상을 떠나게 되지요. 그렇다고 슬프고 괴롭다고 마냥 울고만 있을 수는 없어요. 살아 있는 사람들은 돌아가신 분을 위해 예를 갖춰서 명복을 빌어 주었지요.조선 시대에는 일생의 중요한 순간을 소중히 여기며 의례를 치렀어요. 어떤 의례들이 있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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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3
08-29
6
관혼상제, 조선 시대의 대표적 일생 의례
사람은 누구나 죽음을 맞이해요. 그래서 사람들은 살아가면서 중요한 시기를 소중히 여기고 기념하고자 하였어요. 일정한 형식을 갖추고 행사를 치르며 의미를 새겼지요. 이것을 의례라고 해요.출생 후 성장하여 혼례를 치르고 일정 기간 살다가 세상을 떠나면 산 사람들이 상례를 치러요. 상례가 끝나면 산 사람은 죽은 사람의 명복을 빌며 제사를 지내지요. 이러한 혼례와 상례, 제례는 모두 한 사람의 일생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의례라 할 수 있어요.조선 시대에는 사람들은 일생에서 중요한 일이 있을 때 의례를 치르며 의미를 되새겼어요. 그들은 이러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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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3
08-30
5
관례, 어른이 되다
오늘날에는 만 열아홉 살에야 비로소 성인이 되지요. 매년 5월 셋째 월요일이 성년의 날인데, 요즘은 성년의 날을 되새기지 않고 그냥 지나치는 경우가 많아요.하지만 옛날에는 어른이 되는 의식이 매우 중요한 행사였어요. 성인식을 치렀느냐 치르지 못했느냐에 따라 어른과 아이로 나누었지요. 남자의 성인식은 ‘관례’, 여자의 성인식은 ‘계례’라고 불렀어요. 관례와 계례는 보통 새로운 해가 시작되는 1월에 치렀어요.관례를 치르는 소년은 먼저 어른이 평상시에 입는 옷으로 갈아입어요. 행사를 진행하는 사람이 남자아이의 댕기머리를 풀어 상투를 틀고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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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
08-30
4
혼례, 신랑 신부의 혼인 의례
혼례는 신랑과 신부의 혼인 의례를 말해요. 예로부터 혼인은 사람이 일생에서 겪는 가장 중요한 일이라는 뜻에서 ‘인륜지대사’라고 했어요. 처녀와 총각이 새 가정을 이루는 일이니 중요하지요.조선 시대에 혼례를 올리기 위해서 몇 가지 혼례 절차를 밟아야 했어요. 혼인은 두 집안의 큰 행사이며 동네 사람들과 함께 어울리는 잔치인 만큼 신중하게 치르기 위해서였어요.혼인에 대한 이야기가 오가면 남자 쪽에서 여자 쪽으로 사주를 보냈어요. ‘사주’란 사람이 태어난 해, 월, 일, 시간을 말해요. 사주를 비교해서 두 사람이 서로 어울린다는 점괘가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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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4
08-30
3
돌아가신 분을 떠나 보내는 이야기
세상을 떠난 사람을 위해 살아 있는 사람들이 예를 갖추어 명복을 빌며 떠나보내는 의례를 ‘상례’라고 해요. 예로부터 우리 조상들은 상례를 매우 중요한 의례로 여겼어요. 죽음은 본래 왔던 곳으로 영혼이 되돌아가는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에요. 그래서 사람이 죽은 것을 일러 ‘돌아가셨다’라고 표현하게 된 것이지요.돌아가신 분이 있으면 사람들은 베옷을 입고 머리를 푼 채로 “아이고, 아이고” 하고 애달프게 곡을 했어요. 그리고 한 사람이 지붕 위로 올라가 북쪽을 향해 옷을 흔들며 외쳤지요. 돌아가신 분이 다시 살아나기를 간절히 바라는 마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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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
08-30
2
제례, 조상님을 잘 모셔야 효자
옛사람들은 조상을 잘 모셔야 그 집안이 잘된다고 여겼어요. 조상의 혼령이 자손들을 지켜 준다고 믿었거든요. 그래서 돌아가신 조상 섬기기를 살아 계신 부모 모시듯 해야 한다고 자손들에게 늘 말했지요.이처럼 돌아가신 분을 위해 제사를 지내며 후손의 도리를 다하는 것을 ‘제례’라고 했어요. 그래서 제사는 옛날부터 집안의 중요한 일로 자리 잡았어요. 만약 제례를 소홀히 하는 사람이 있으면 마을 사람들로부터 손가락질당하기 일쑤였지요.“자신의 근본도 모르는 불효막심한 사람 같으니라고!” 특히 조선 시대 양반들은 집에 조상들의 영혼을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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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
08-30
1
역사 속 작은 이야기: 함 사세요~ 함 사세요~
옛날에는 혼례에 앞서 신랑 집에서 신부집으로 함을 보냈어요. 함 속에는 신부에게 줄 푸른색과 붉은색의 치맛감을 청실과 홍실로 예쁘게 묶어서 넣었어요. 청색의 청실은 신랑을, 홍색의 홍실은 신부를 가리켰어요. 청실과 홍실처럼 신랑 신부도 잘 어울리는 한 쌍이라는 뜻으로 넣었지요.함을 짊어지고 신부집으로 가는 사람을 함진아비라 했어요. 요즘 함진아비는 오징어 가면을 쓰지만, 예전의 함진아비는 숯으로 얼굴을 검게 칠해 우스꽝스런 모습으로 꾸몄어요. 함진아비가 신부집 앞에 도착해서 고래고래 외치기 시작해요.“함 사려! 함 사려!”그러면 미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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