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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공식 행사 보고서, 의궤
청계천(서울 종로구)“6·25 전쟁 때 폭격으로 무너진 수원 화성의 건물이 한 두 채가 아닙니다. 어떻게 다시 복원해야 할까요? 걱정입니다.”“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화성성역의궤를 보고 그대로 만들 수 있으니까요.”조선 시대에는 나라와 왕실의 중요한 행사를 그림과 글로 기록한 책을 만들었어요. 이를 의궤라고 하지요. 조선 정조 때 만들어진 수원 화성의 건물들은 6·25 전쟁 때 폭격으로 크게 훼손되었어요. 그래도 다행히 수원 화성을 만들 때 작성한 의궤 덕분에 원래 모습으로 복원할 수 있었지요.의궤는 국가의 의례, 건설 등 중요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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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6
08-29
5
나라와 왕실에서 행사를 치를 때 만든 의궤
조선 시대에도 국가적으로 큰 행사가 많았어요. 국왕이 혼인을 하고, 세자가 태어나고, 죽어서 장례를 치르는 것이 모두 중요한 일이었지요. 조선에서는 유교 전통에 따라 예법과 절차를 중요시했기 때문에, 각종 행사가 있을 때마다 의궤를 만들어 그 상세한 절차, 비용, 동원 인력 등을 세세히 기록해 두었어요. 물론 나라에서 성곽과 궁궐을 짓고 보수할 때에도 의궤를 제작했어요.의궤란 ‘의식’과 ‘궤범(규범이라는 의미)’을 하나로 더한 말이에요. 좀 더 자세히 말하면 ‘의례 행사에서 본보기가 되는 규범’이란 뜻이지요. 그래서 ‘의궤’라는 말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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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
08-29
4
의궤의 제작 시기와 종류
지금까지 남아있는 의궤 중에서 가장 오래된 것은 1601년(선조 34)에 선조의 부인인 의인왕후 박씨의 장례 과정을 기록한 의궤에요. 이 의궤에는 그을린 흔적이 남아 있어 하마터면 불에 타 없어질 뻔한 위기를 넘겼음을 짐작할 수 있어요.이후 17세기부터 다수의 의궤가 만들어졌어요. 의궤는 한 종류당 여러 개를 만들었는데, 그중에서 국왕이 보는 1부는 특별 제작되었어요. 이를 어람용 의궤라 해요. 나머지 의궤는 해당 업무를 담당한 관청이나 역사책을 보관하는 지방의 사고 등 여러 곳에 나누어 보관하는데, 이를 분상용 의궤라고 해요.국왕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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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
08-29
3
의궤가 만들어지는 과정
국왕의 혼례나 장례, 주요한 궁궐 밖 행차, 궁궐의 건설과 보수 등 중요한 행사가 가까워지면 그 관련 업무를 담당할 임시 기관이 설치되었어요. 이를 도감이라고 해요. 결혼식이 있으면 가례도감, 장례식이 있으면 국장도감처럼 행사의 종류에 따라 이름이 붙여졌어요.그리고 의궤 이름 중 ‘∼도감 의궤’라고 하는 것은 그 도감에서 의궤를 만들었다는 뜻이에요. 예를 들어 『영조 정순왕후 가례도감 의궤』는 1759년에 거행된 영조와 정순왕후의 혼례를 담당한 가례도감에서 만든 의궤라는 의미랍니다.영조 정순왕후 가례도감 의궤국립중앙박물관왕실의 행사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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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
08-29
2
수원 화성의 건축 과정을 알 수 있는 『화성성역의궤』
조선 시대에는 성곽을 지을 때도 의궤를 만들었어요. 그 대표적인 의궤가 바로 『화성성역의궤』라고 할 수 있어요.화성성역의궤국립중앙박물관『화성성역의궤』는 총 9권의 책으로 구성되어 있어요. 여기에는 수원 화성 공사 때 작성된 각종 문서를 비롯해 공사에 참여한 인원, 사용된 물품, 설계 도면 등에 관한 기록과 그림이 실려 있어요. 일종의 수원 화성 건축에 관한 공식 보고서인 셈이지요.내용이 매우 상세한데, 공사에 참여한 1,800여 명의 이름과 살고 있는 주소, 일한 날의 수와 받은 임금까지 기록되어 있어요.뿐만 아니라 화성 공사에 사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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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
08-29
1
역사 속 작은 이야기: 145년 만에 고국으로 돌아온 외규장각 의궤
조선 후기 정조 때 강화도에 만들어진 외규장각에는 의궤를 비롯하여 많은 도서가 보관되어 있었어요. 그런데 1866년 프랑스가 천주교 박해 사건을 구실로 강화도를 침입했어요. 이를 병인양요라고 해요. 병인양요 당시 프랑스군은 외규장각을 불태우고 의궤를 비롯한 340여 권에 달하는 도서를 약탈하였어요. 이 도서들은 프랑스 국립 도서관에 보관되어 있었어요.병인양요의 전개1955년 한국 여성 최초로 프랑스 유학을 떠난 박병선은 프랑스 국립도서관 사서로 일하며 외규장각 의궤를 찾아 다녔으나 쉽게 발견하지 못했어요. 그러던 중 1975년에 박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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