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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왕조실록
조선 역사의 보물 창고 조선왕조실록
조선왕조실록은 왜 편찬하였을까요?
실록은 어떤 과정을 거쳐 만들어졌나요?
임금도 사관의 눈길을 피하지 못한다?
왕도 마음대로 볼 수 없었던 사초
조선의 역사가 담긴 실록을 온전히 보존하라
역사 속 작은 이야기: 조선왕조실록에는 이런 이야기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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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역사의 보물 창고 조선왕조실록
정족산사고지(인천 강화군)문화재청“김일손의 사초를 모두 궁궐로 들여오라.”“예로부터 사초는 임금이 볼 수 없습니다. 임금이 만약 사초를 보면 있는 그대로 사실을 기록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연산군은 이극돈에게 사초를 가져올 것을 명하였지만, 결국 김일손의 사초를 보지 못했어요. 도대체 사초가 무엇이길래 임금도 보지 못했던 걸까요? 사초는 평소 사관이 기록한 원고로 실록 작성의 기본 자료였어요. 그럼 실록은 무엇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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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
08-28
6
조선왕조실록은 왜 편찬하였을까요?
조선은 새 왕이 즉위하면 이전 왕 때 일어난 일들을 책으로 만들었어요. 이것이 ‘실록’이에요. 말 그대로 ‘사실을 기록’한 실록은 왕의 재위 기간에 있었던 일들을 연월일 시간 순서에 따라 편찬한 역사서이지요.조선은 유교 이념을 바탕으로 세운 나라에요. 유교는 기본적으로 옛것을 숭상해 모범적인 통치나 태평성대의 기준을 모두 고대의 모범적인 사례에 두었어요. 정책을 논의하다가 의견이 엇갈리면 옛날에는 어떻게 처리했는지 알아보고 참고하였지요.그러다 보니 성현들의 언행이 기록된 경전과 역사 기록이 중시되었고, 자신들의 일도 후세에 참고가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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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6
08-28
5
실록은 어떤 과정을 거쳐 만들어졌나요?
조선왕조실록은 태조부터 철종까지 25대 472년간을 기록한 분량이 총 1,893권 888책이에요. 이 내용을 원고지에 옮겨 적으면 63빌딩의 세 배 높이가 되고, 한글로 번역한 실록은 하루 100쪽씩 읽어도 4년 3개월이 걸리는 양이에요. 매우 방대하죠.조선의 왕은 고종과 순종까지 모두 27대이지만, 그 당시 실록은 일제에 의해 만들어지면서 왜곡된 내용이 있어 조선왕조실록에 포함시키고 있지 않아요. 또 조선왕조실록 가운데에는 『연산군일기』,『광해군일기』와 같이 ‘일기’라는 이름이 붙은 것도 있지만 성격과 체제는 실록과 같아요.또 대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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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
08-28
4
임금도 사관의 눈길을 피하지 못한다?
실록을 비롯하여 각종 역사를 기록하고 편찬하는 일은 사관들이 담당하였어요. 사관의 가장 중요한 일은 사초를 작성하는 일, 즉 왕과 그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을 낱낱이 기록하는 거예요. 어전 회의는 물론 왕과 신하가 단독으로 만나는 자리까지, 사관은 왕이 가는 곳이면 어디든 따라다니며 모든 것을 기록했어요.사초는 역사 기록의 기초 자료이기 때문에, 사관들은 있는 사실 그대로를 쓰는 직필을 중시하였어요. 왕이나 관료들로서는 자신에 대해 뭐라고 썼는지 무척 궁금했겠지요. 하지만 사초가 공개된다면 사관들이 남의 눈치를 보느라고 솔직하게 기록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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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
08-28
3
왕도 마음대로 볼 수 없었던 사초
사관은 임금의 곁에서 보고 들은 내용을 그대로 꼼꼼히 기록했어요. 아무리 임금이라도 사관들의 눈은 피하지 못했지요. 아주 강력한 권력을 지닌 국왕이라도 역사를 제대로 기록하려는 사관의 신념을 꺾을 수는 없었어요. 이와 관련하여 태종의 일화를 살펴볼까요?하루는 태종이 사냥을 하러 갔어요. 그런데 그만 말에서 떨어졌지요. 순간 태종은 주위에 사관이 있는지 살펴보았어요. 자신이 말에서 떨어졌다는 것이 역사에 기록된다면 체통이 서지 않겠지요. 태종은 신하에게 다음과 같이 지시했어요.“내가 말에서 떨어진 것을 사관이 알지 못하게 하라.”그러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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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9
08-28
2
조선의 역사가 담긴 실록을 온전히 보존하라
실록을 편찬하는 과정만큼 보관하는 방법도 중요했어요. 조선 건국 이후 실록은 춘추관에 한 부를 보관하고, 충주·성주·전주 등 교통의 요지였던 주요 도시의 사고에 한 부씩 모두 4부를 보관했어요.그런데 임진왜란 때 실록은 전주 사고에 보관했던 것만 남고 모두 불타 버렸어요. 전주 사고의 실록은 난리가 나자 백성들이 미리 깊은 산속으로 옮겨서 무사할 수 있었어요.평창 오대산사고(강원 평창군)임진왜란이 끝난 후 조정에서는 전주 사고의 실록을 원본으로 삼아 실록을 다시 인쇄했어요. 전쟁 후의 어려운 상황에서도 역사 기록을 남겨야 한다는 의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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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
08-28
1
역사 속 작은 이야기: 조선왕조실록에는 이런 이야기도 있다?
조선왕조실록에는 참으로 많은 이야기가 담겨 있어요. 따분한 정치 이야기가 대부분이지만, 백성들의 생활 모습을 조금이나마 엿볼 수 있는 기록도 있어요. 독특한 주제의 이야기나 생활사에 관한 재미난 기록들도 있어요.예컨대 태종 때 일본에서 온 코끼리, 선조 때 남자 아이들의 귀고리 유행, 정조가 썼다는 안경 등과 같은 흥미로운 이야기도 담겨 있지요. 이 중 코끼리 이야기를 소개해 볼까 해요. 우리나라에 없었을 것 같지만 코끼리가 태종실록에 처음 등장해요.일본 국왕이 코끼리 한 마리를 바쳤다. 우리나라에는 처음이다. 사복시에서 기르게 했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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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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