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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왕릉
조선의 왕들이 잠들어 있는 조선 왕릉
조선 왕들의 마지막 궁궐, 조선 왕릉
제사를 준비하는 재실
왕릉으로 들어가는 입구의 물길, 금천
인간의 세계와 신의 세계를 구분하는 홍살문
왕릉으로 가는 길, 신도와 어도
제사를 지내는 공간, 정자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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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왕릉의 비밀, 혼유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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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속 작은 이야기: 왕릉이 아닌 왕의 무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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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왕들이 잠들어 있는 조선 왕릉
영릉(효종과 인선왕후의 릉, 경기 여주시)문화재청“우와! 이곳이 바로 신의 정원이군요.”“자연과 인공이 훌륭하게 조화된 곳이라고 생각합니다.”2008년 조선 세조의 무덤인 광릉을 둘러본 유럽 정원건축가들은 한동안 입을 다물지 못했어요. 이들은 풍경이 강조된 유럽의 정원과 달리 조선 왕릉이 자연과 인공의 조화가 뛰어난 최고의 정원이라며 감탄했지요.조선의 왕들이 죽은 뒤 잠들어 있는 조선 왕릉은 어떻게 만들어졌고, 어떤 모양을 하고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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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
08-28
10
조선 왕들의 마지막 궁궐, 조선 왕릉
왕릉은 죽은 왕이 머무는 마지막 궁궐이라고 할 수 있어요. 그래서 조선 시대에는 손꼽히는 좋은 자리, 즉 명당에 최고의 건축가들과 많은 백성들을 동원해 왕릉을 만들었어요. 조선 시대에는 왜 이처럼 왕릉을 만드는 데 많은 노력을 기울였을까요?왕이 죽으면 왕위 계승자가 곧바로 왕위를 물려받아요. 새 왕으로서는 자신의 능력을 인정받을 수 있는 첫 시험대가 바로 돌아가신 전 왕의 무덤을 만드는 일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전 왕의 무덤, 즉 왕릉을 만드는 데 최대한 노력을 기울였지요.왕릉을 만드는 일은 오랜 시간이 걸리고 많은 사람들이 동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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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28
9
제사를 준비하는 재실
조선을 이끌어갔던 사상은 유교였어요. 유교 사상에서는 부모님과 조상에게 효를 다하는 것을 매우 중요하게 여겼어요. 제사는 부모님과 조상에게 고마움을 표시하는 방식의 하나라고 할 수 있어요. 그래서 조선 왕릉에 있는 여러 시설들도 유교의 제사 의식과 관련이 깊어요.왕릉의 홍살문 바깥에 있는 재실은 제사를 준비하는 곳이에요. 제물을 마련하고 제례를 준비하는 모든 일들이 이곳에서 이루어지지요.영릉 재실문화재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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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7
08-28
8
왕릉으로 들어가는 입구의 물길, 금천
재실을 지나 숲길을 따라가면 왕릉을 가로 질러 흐르는 작은 물길을 만나게 됩니다. 왕릉을 가려면 반드시 이 ‘금천’이라는 물길을 건너야 해요. 이 금천을 지나기 전까지는 사람들이 사는 세속의 땅이지만 금천을 건너면 신이 사는 안쪽 세상, 즉 즉은 왕의 혼백이 머무는 신성한 공간이지요. 왕릉이 있는 곳에는 오로지 깨끗하고 신성한 것만 들어갈 수 있어요. 그래서 사악한 기운을 금한다고 해서 이 물길을 금천이라고 해요. 이 물길을 건너는 다리는 금천교라고 하지요.금천과 금천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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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9
08-28
7
인간의 세계와 신의 세계를 구분하는 홍살문
금천교를 건너면 붉은색 칠을 한 문이 우뚝 서 있어요. 이제 정말 신의 세계로 들어간다는 표시이지요. 나무로 만들어진 홍살문은 출입문의 역할도 했지만, 신성한 장소라는 것을 알리고 보호하는 의미도 갖고 있어요. 옛날부터 붉은색은 악귀(나쁜 귀신)를 물리치는 색으로 알려져 있지요. 한편, 홍살문의 태극 문양 위에 있는 삼지창은 나쁜 기운을 막는 풍수적인 의미를 지니고 있어요.홍살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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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
08-28
6
왕릉으로 가는 길, 신도와 어도
홍살문에 들어서면 제사를 지내는 정자각까지 이어진 돌길을 만나게 돼요. 이 돌길을 참도라고 하는데, 길이 두 개로 구분되어 있어요. 자세히 보면 왼쪽 길은 조금 높게 되어 있고, 오른쪽 길은 조금 아래에 있어요. 우리는 어느 쪽 길로 걸어가야 할까요?참도의 왼쪽 높은 길을 ‘신도(神道)’라고 하고, 오른쪽 낮은 길을 ‘어도(御道)’라고 해요. 신도(神道)는 한자의 뜻 그대로 신(죽은 왕의 영혼)이 다니는 길이에요. 즉 무덤에 묻힌 왕과 왕비의 영혼이 다니는 길이지요. 반면 어도(御道)는 사람이 다니는 길로, 제사를 지내러 가는 왕이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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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7
08-28
5
제사를 지내는 공간, 정자각
신도와 어도는 곧게 정자각 앞으로 뻗어 있어요. 그리고 정자각 앞에서 오른쪽으로 꺾인 후 다시 한 번 더 꺾였어요. 신도와 어도가 끝나는 곳에 계단이 있어요. 신도는 구름이 새겨진 소맷돌(돌계단의 난간) 계단으로 이어지고, 어도는 소맷돌 없는 계단으로 이어져요.이처럼 참도에서 정자각으로 오르는 계단도 죽은 영혼의 영역과 살아있는 사람의 영역이 나뉘어져 있지요. 그런데 정자각의 동쪽 계단은 2개이고 왼쪽 계단은 1개에요. 왜 계단의 숫자가 다를까요?들어갈 때는 동쪽으로 올라가요. 신(신의 영혼)과 사람이 따로 갈 수 있도록 계단이 2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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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
08-28
4
무덤을 지키는 신하, 문인상과 무인상
이제 숨을 고르고 돌아가신 왕이 잠들어 있는 무덤으로 올라가 볼까요?무덤 앞에는 무덤을 지키는 동물 모양의 석상(돌로 만든 상)이 놓여져 있어요. 또한 돌로 만든 네 명의 신하가 무덤을 지키고 있어요. 행정 업무를 맡아보는 문신 관리(문인) 모습의 문인석과 군사 업무를 맡아보는 무신 관리(무인) 모양의 무인석이 그들이지요. 문인석이 각 한 마리씩 석마(石馬, 돌로 만든 말)를 데리고 서 있으면서 언제든지 왕의 명령에 따를 준비가 되어 있는 모습이에요. 그 아래 좌우에는 무인석이 1개씩 긴 칼을 짚고 위엄 있게 왕을 호위하고 있는데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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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
08-28
3
조선 왕릉의 비밀, 혼유석
능침 앞에는 네모난 돌상이 있지요? 사람들은 이 돌상에 제물을 올린다고 생각해요. 그러나 혼유석은 전혀 다른 일을 하는 곳이에요. 바로 무덤 주인공의 혼백(영혼)이 나와서 머무는 공간이에요. 그래서 이름도 ‘혼유석’이지요. 별다른 특징 없이 네모 반듯한 돌상이어서 크게 주목받지 못하지만, 사실은 매우 중요한 기능을 해요. 어떤 기능이 있을까요?이 돌은 대체로 가로 약 3미터, 세로 약 2미터, 높이 약 50센티미터의 거대한 돌로 만들어졌는데, 생각보다 엄청 무거워요. 왕릉마다 차이는 있지만 대체로 무게가 7톤 정도라고 해요. 이 돌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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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9
08-28
2
무덤을 지켜주는 석수와 곡장
무덤 주위에 있는 돌로 만든 동물을 ‘석수(石獸)’라고 해요. 일반적으로 왕릉에는 석호(石虎, 돌로 만든 호랑이) 네 마리와 석양(石羊, 돌로 만든 양) 네 마리가 밖을 향해 배치되어 있어요. 석호는 호랑이 모양의 수호신으로 산과 능을 지켜주고, 석양은 양 모양으로 사악한 것을 물리치고 명복을 비는 뜻이 담겨져 있답니다.왕릉의 제일 뒤쪽에는 무덤 주위를 감싸고 있는 담이 있어요. 이 담은 ‘곡장’으로 불리는데, 산짐승의 공격이나 바람을 막아주는 역할을 해요.무덤 주변의 석수와 곡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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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28
1
역사 속 작은 이야기: 왕릉이 아닌 왕의 무덤
조선 시대에는 태조부터 순종에 이르기까지 모두 27명의 왕이 있었어요. 그런데 27명 모두 왕릉에 묻히지는 않았습니다. 어찌된 일일까요?조선의 제10대 임금 연산군과 제15대 임금 광해군은 나라를 제대로 다스리지 못했다고 해서 신하들에 의해 쫓겨났습니다. 그래서 ‘∼조’나 ‘∼종’으로 불리지 않고 왕자였을 때의 호칭인 ‘∼군’으로 불립니다. 이 때문에 두 임금의 무덤은 왕이나 왕비의 무덤인 ‘릉’으로 불리지 않고 왕자의 지위에 맞는 ‘묘’라고 불리지요.현재 연산군의 묘는 서울 도봉구 방학동에 있고, 광해군의 묘는 경기도 남양주에 있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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