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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을 그림에 담다, 조선의 회화
정선 필 인왕제색도문화재청“내 오랜 벗이 하루빨리 병상에서 일어나길 바라며 이 그림을 그렸소.”“어린 시절부터 두 분이 함께 지낸 추억이 깃든 인왕산을 그리셨군요.”서울의 인왕산을 그린 ‘인왕제색도’에는 비 그친 뒤의 자욱한 안개와 함께 바위 봉우리와 울창한 숲이 실감나게 표현되었어요. 눈 앞의 경치를 실감나게 그린 산수화예요. 이밖에도 조선 시대에는 수많은 그림이 그려졌어요. 대표적인 그림들을 살펴보도록 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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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28
8
조선 시대에 그려진 다양한 그림들
조선 초에는 중국의 여러 화풍(그림 그리는 경향)을 받아들였어요. 여기에 도교나 노장사상의 분위기가 반영된 그림도 그려졌지요. 그리고 우리나라 예술인들의 감각도 더해졌구요. 대표적인 작품으로는 안견이 그린 ‘몽유도원도’와 강희안이 그린 ‘고사관수도’가 있어요.안견은 도화서(그림 그리는 일을 담당했던 관청)에 소속된 전문 화가였어요. 그는 역대 화가들의 화풍을 깊이 연구하고 장점을 받아들이면서도 자신만의 독자적인 경지를 개척하였어요.그래서 조선 세종 때 화가로서 이름 높았어요. 그가 안평대군의 꿈 이야기를 듣고 그린 ‘몽유도원도’는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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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28
7
안견의 몽유도원도
몽유도원도(복제품)국립중앙박물관이 그림은 조선 세종의 둘째 아들 안평대군이 1447년(세종 29) 4월 20일(음력)에 꿈속에서 거닐었던 도원의 풍경을 안견에게 말해주고 그리게 한 것이에요. ‘몽유’는 ‘꿈에 거닐다’라는 뜻이에요. ‘도원’은 ‘무릉도원’의 줄임말로 ‘복숭아꽃이 활짝 핀 정원’이라는 의미이지만, 일반적으로 ‘이상 세계’를 뜻해요. ‘도’는 ‘그림’이라는 뜻이지요.조선 초기 최고의 화가로 이름 높았던 안견은 세로 38.7㎝, 가로 106.5㎝나 되는 넓은 비단에 3일에 걸쳐 이 그림을 그렸어요. 안평대군은 그림을 그리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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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29
6
고사관수도
고사관수도(강희안)국립중앙박물관이 그림은 조선 세종 때부터 세조 때에 이르기까지 문신 관료로 활동한 강희안의 작품이에요. ‘뜻이 높고 깨끗한 선비가 물을 바라보는 그림’이란 뜻을 갖고 있지요.조선 초에는 안견을 비롯한 많은 화가들이 산수를 웅장하게 묘사하고 인물을 보일 듯 말 듯 작게 그렸어요. 반면 강희안은 사람과 자연이 어우러진 그림을 그리곤 했는데, 대표적인 작품이 바로 ‘고사관수도’이지요.‘고사관수도’는 세로 23.4㎝, 가로 15.7㎝ 크기의 종이에 그려졌는데, 어른 손바닥 크기를 조금 넘는 자그마한 그림이에요. 먹선으로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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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29
5
정선의 인왕제색도
정선 필 인왕제색도문화재청이 그림은 조선 후기 화가 정선의 작품이에요. 세로 79.2㎝, 가로 138.2㎝의 종이에 먹으로 그려졌지요. 제목에서 ‘인왕’은 인왕산을, ‘제색’은 비가 온 뒤 맑게 갠 모습을 뜻해요. 정선은 지금의 서울 궁정동 쪽에서 인왕산을 바라보고 이 그림을 그렸어요. 소나기가 내린 뒤 인왕산의 풍경을 사실적으로 묘사한 그림이에요.정선은 조선 시대 실제 경치를 그린 산수화를 개척한 인물로 높이 평가받고 있어요. 그 이유는 정선이 중국의 자연이나 유교 경전에 서술된 경치를 상상하여 그리는 낡은 관습을 과감하게 떨쳐냈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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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29
4
김홍도의 씨름
씨름(김홍도 필 풍속도 화첩)문화재청이 그림은 조선 후기 도화서에서 화가로 활약한 김홍도의 작품이에요. 풍속화 모음책인 『김홍도필 풍속도 화첩』에 있는 25점 중 하나로, 세로 26.9cm, 가로 22.2cm의 종이에 그려져 있어요. 우리가 흔히 쓰는 공책보다 조금 큰 종이에 조선 후기의 다양한 생활 모습이 담겼어요.김홍도가 그린 ‘씨름’은 단옷날 씨름 경기가 벌어지는 광경을 묘사한 그림이에요. 이 그림에는 총 22명의 인물이 있는데, 제각기 다른 행동, 다른 표정, 다른 얼굴로 그려져 있어요. 갓을 쓴 양반들과 일반 평민들이 같이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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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
08-29
3
신윤복의 월하정인
월하정인(신윤복 필 풍속도 화첩)문화재청이 그림은 김홍도와 함께 조선 후기 풍속화의 쌍벽을 이루는 신윤복의 작품이에요. 신윤복의 풍속화를 모은 『신윤복 필 풍속도 화첩』에 있는 25점 중 하나로, 세로 28.2cm, 가로 35.2cm의 종이에 그려져 있어요. ‘월하정인’은 ‘달빛 아래의 연인’라는 뜻이에요.신윤복은 주로 양반과 부녀자들의 생활과 유흥, 남녀 사이의 애정 등을 소재로 삼았어요. 그래서 신윤복의 그림은 조선 후기의 살림살이, 의복, 머리 모양 등을 연구하는 데 큰 도움이 되지요. ‘월하정인’은 늦은 밤 담 모퉁이에 남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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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
08-29
2
민화 까치호랑이
까치호랑이국립중앙박물관지금부터는 조선 후기에 그려진 민화 ‘까치호랑이’를 살펴봐요. 세로 134.6cm, 가로 80.6cm의 종이에 그려진 그림으로 누가 그렸는지는 전하지 않고 있어요. 조선 후기에 유행한 민화는 서민의 미적 감각에 맞게, 형식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롭게 표현했어요.민화에는 아무 걱정 없이 행복하게 살고 싶은 백성의 작은 소망들이 담겨 있었어요. 까치, 호랑이, 소나무, 학, 잉어, 원앙 등 그 소재가 다양하였지요. 그런데 위에 소개된 까치와 호랑이는 무엇을 의미할까요?당시 민간에서 호랑이는 나쁜 기운을 막아 주는 동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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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7
08-29
1
역사 속 작은 이야기: 인왕제색도에 담긴 슬픈 이야기
‘인왕제색도’에는 슬픈 이야기가 전해오고 있어요. 이 그림은 정선이 76세 때인 1751년(영조 27)에 그려졌는데, 자신의 가장 친한 친구인 이병연이 노환으로 몸져 눕자 그를 생각하며 그린 것으로 추정되고 있어요. 이병연이 사망하기 사흘 전까지 서울에는 비가 내리고 있었어요.정선이 ‘인왕제색도’를 그 무렵에 그렸다면, 이병연이 숨을 거두기 며칠 전까지 정선은 ‘인왕제색도’를 그리고 있었던 셈이지요. 그러나 정선의 간절한 바람과는 달리 이병연은 결국 숨을 거두고 말았답니다.그런데 어떻게 이러한 사실을 알게 되었을까요? ‘인왕제색도’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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