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려움 속에서도 대한민국 임시 정부를 이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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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9년 3·1 운동이 일어났어요. 수많은 사람이 일제의 총칼에 죽음을 맞이하기도 했지요. 하지만 이에 굴하지 않고 치열하게 우리의 만세운동을 벌이며 독립 의지를 전 세계에 알렸어요.
3·1 운동 직후 김구는 중국 상하이로 건너갔어요. 일제의 심한 탄압에 더는 국내에서 독립운동을 펼치기 어려웠거든요. 그즈음 국내외 다양한 임시 정부가 세워졌는데, 임시 정부를 통합해 상하이에 대한민국 임시 정부를 세웠어요. 대한민국 임시 정부는 국민이 주인이 되는 정치 제도를 택했어요. 또한 독립운동을 이끌어가기 위해 노력했어요.
임시 정부를 찾아간 김구는 임시 정부의 뜰을 쓸고, 문지기가 되어 지키겠다고 했어요. 이후 그는 임시 정부 사람들의 생각이 나뉘어 어려움을 겪을 때도, 독립 운동가들이 하나 둘 떠나갈 때도 흔들리지 않았어요. 임시 정부의 중심이 되어 독립 운동을 이끌었어요.
일제는 1931년 만주 사변으로 만주를 점령하고, 상하이까지 탄압의 손길을 뻗쳐왔지요. 활동이 쉽지 않았던 임시 정부는 이제 새로운 형태의 활동을 모색해야 했어요.
김구는 침체된 임시 정부에 활력을 불어넣기 위해 한인 애국단을 조직해 무장 투쟁을 전개했어요. 윤봉길 등 한인 애국단원들의 활동에 중국 국민당 정부는 박수를 보냈고, 일제는 김구를 체포하기 위해 눈에 불을 켰어요. 어마어마한 현상금도 내걸었지요.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이동 경로
일제의 탄압으로 한 곳에만 머물 수 없었던 임시 정부는 중국 국민당 정부와 함께 이곳저곳 옮겨 다녀야 했어요. 1937년 중일 전쟁이 일어났고, 일제의 공격은 더욱 거세지며 임시 정부는 어려움이 더해 갔지요. 광저우 등을 거쳐 충칭까지 옮겨가야 했어요. 이러한 어려움 속에서도 일제에 맞서 싸우기 위해 한국광복군도 만들었어요. 1941년 일본이 진주만을 공격하며 태평양 전쟁을 일으키자, 한국광복군은 미군과 함께 국내에 침투하려는 진공작전도 계획했어요.

이동 시기 임시 정부를 이끈 김구의 모습
독립기념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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