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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산리에서 큰 승리를 거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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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군은 청산리 백운평의 울창한 숲 속에 숨어 있었어요. 독립군은 일본군을 숨죽여 기다렸어요. 일본군이 나타나면 일제히 공격할 생각이었지요.


“이제 일본군이 이곳으로 올 때까지 기다리기만 하면 된다!”

10월 21일 새벽이 밝았어요. 수많은 일본군이 길게 늘어서며 골짜기로 들어서고 있었어요. 일본군은 독립군이 청산리 골짜기 곳곳에 숨어 있는 줄도 모르고 깊숙이 행군해 왔어요. 어느새 청산리 계곡은 일본군으로 까맣게 뒤덮여 갔지요.


이때 어디선가 권총 소리가 들려 왔어요.


“땅! 땅땅!”


이범석 장군의 권총 소리였어요. 독립군은 이 권총 소리를 신호로 일본군을 향해 집중 사격을 시작했어요.


“놈들이 쳐들어왔다! 모두 돌격하라!”


그러자 사방에 숨어 있던 독립군들이 함성을 지르며 우르르 쏟아져 나왔어요. 일본군은 우왕좌왕하였어요.


“적을 한 놈도 살려 두지 마라!”


독립군의 공격은 더욱 거세어져 갔어요. 청산리 골짜기는 어느새 총소리와 비명으로 뒤섞여 아수라장이 되었지요. 독립군의 기습 공격에 일본군은 고스란히 당할 수밖에 없었지요.

이 싸움에서 수백 명의 사상자가 발생한 일본군과는 달리, 독립군은 사상자가 20여 명에 불과했어요. 큰 승리였어요.


첫 전투에서 진 일본군은 전열을 가다듬고 장기전에 돌입하였어요.


이에 독립군도 작전을 바꾸었지요. 주력 부대가 그대로 백운평에 있는 것처럼 가장하고 하룻밤 새 160리(63km)를 강행군하였어요. 그리고 갑산촌으로 후퇴하여 천수평에 있는 기병 중대를 기습하였지요. 이때 도망자 네 명을 제외한 중대장 이하 전원을 사살하는 전과를 올렸어요. 또 독립군은 일본군이 어랑촌에 있다는 정보를 얻고 그곳에서 일본군과 맞붙어 싸웠어요. 이틀 밤낮에 걸친 전투에서 독립군은 수많은 일본군을 사살하는 큰 승리를 거두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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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산리 대첩




처음엔 너무나도 많은 수의 일본군 때문에 밀리는 듯했어요. 하지만 다른 독립군 부대들이 합류하자 상황이 달라졌어요. 김좌진 장군을 중심으로 똘똘 뭉친 독립군 부대들은 일본군을 거세게 몰아내기 시작하였어요.


청산리에는 며칠간 총소리가 끊이지 않았어요. 일주일 동안 10여 차례의 전투가 치러졌어요. 독립군 부대들은 모든 전투에서 승리했어요.


김좌진 장군이 이끄는 북로 군정서군이 청산리 백운평·천수평·마록구 등의 3차에 걸친 싸움에서 일본군을 크게 물리친 싸움을 ‘청산리 대첩’(1920년)이라고 불러요.

청산리 대첩 이후 김좌진은 만주 일대에 흩어져 활동하고 있던 여러 독립군 부대들을 통합하여 나갔어요. 그의 꿈은 더 크고 강한 독립군 군대를 만들어 한반도로 진격하는 것이었어요.


하지만 일본과 러시아의 음모에 휘말려 그의 꿈은 그만 깨어지고 말았어요. 그러나 김좌진은 좌절하지 않고 독립 운동 단체를 조직하여 독립군을 길러내는 데 모든 힘을 기울였어요.


그런데 1930년 1월 24일 김좌진은 그만 공산주의자가 쏜 흉탄에 최후의 순간을 맞이하고 말았어요.


암울한 일제 식민 시대에 김좌진의 청산리 대첩은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통쾌함과 용기를 주었지요. 만약 김좌진의 독립군이 더 커졌다면 우리나라 독립은 더 빨리 이루어졌을까요? 만약 여러분이 일제 강점기에 태어나 독립운동을 한다면 어떤 방법으로 하고 있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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