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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민왕, 쌍성총관부를 되찾다
고려, 원의 간섭을 받게 되다
원의 간섭에서 벗어나려고 하다
친원 세력을 제거하고 개혁을 이어가다
쌍성총관부를 공격하다
공민왕과 함께 고려 개혁이 멈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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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민왕, 쌍성총관부를 되찾다
공민왕과 노국공주국립고궁박물관“왕후! 짐이 원을 멀리한다면 왕후는 어찌하시겠소?”“저는 원의 공주가 아니라 전하의 아내입니다. 전하의 뜻에 따를 것입니다.”“저는 원의 공주가 아니라 전하의 아내입니다. 전하의 뜻에 따를 것입니다.”원의 간섭에서 벗어나기 위한 노력을 기울인 이 왕은 누구일까요? 그는 원의 간섭에서 벗어나기 위해 어떤 일들을 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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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
08-27
5
고려, 원의 간섭을 받게 되다
1231년 고려는 또다시 외적의 침입을 받아요. 이번에 쳐들어 온 외적은 몽골이죠. 고려는 강화도로 수도를 옮기면서까지 몽골군에 맞서 저항했지만 계속되는 몽골군의 공격에 고려는 그만 강화를 맺고 말았어요(1259년). 이때부터 고려는 몽골이 중국 땅에 세운 ‘원’의 간섭을 받게 되요. 원 간섭기에 고려의 왕조는 유지되고 있었지만, 고려 스스로 정할 수 있는 게 별로 없었지요.원은 고려의 동북쪽에 관청(쌍성총관부)을 설치해 직접 다스렸어요. 고려 영토 일부를 원에게 빼앗긴 것이죠. 또 고려 국왕도 원에 의해 결정되었어요. 죽은 후 짓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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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9
08-27
4
원의 간섭에서 벗어나려고 하다
고려의 국운이 쇠하고 있던 1352년, 원에 볼모로 끌려간 지 10년 만에 공민왕이 왕이 되어 고려로 돌아왔어요. 공민왕은 약해진 고려를 다시 일으키고자 개혁의 칼을 빼들었어요.그러기 위해 우선 고려는 원의 간섭에서 벗어나야만 했지요. 그래야 왕의 권위도 되찾고 고려의 자주성을 회복할 수 있다고 생각하였어요. 마침 공민왕이 왕위에 오를 즈음 원은 그 세력이 점차 약해지고 있었어요. 이때가 원의 간섭을 벗어날 수 있는 좋은 기회라 공민왕은 판단했지요.몽골풍으로 옷을 입은 고려 관리들국사편찬위원회공민왕은 우선 고려 본래의 풍속을 회복시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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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
08-27
3
친원 세력을 제거하고 개혁을 이어가다
물론 공민왕의 이러한 개혁에 원을 따르던 세력들은 불안해했어요. 하지만 그들이 의지했던 원은 국내 사정으로 고려에 신경 쓸 겨를이 없었지요. 이에 기철 등 원을 따르는 무리는 공민왕을 먼저 없애고자 하였어요.자신을 암살하려는 계획을 미리 알아챈 공민왕은 이를 빌미로 원을 따르는 무리들을 모두 제거해 버렸어요. 방해를 일삼던 무리가 없어지자 공민왕의 개혁에는 거침이 없었어요.고려의 내정을 간섭하는데 중심 역할을 했던 정동행성이란 기관을 폐지하였어요. 정동행성은 원이 일본을 정벌하기 위해 설치한 기관이에요.하지만 일본 정벌에 실패한 이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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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
08-27
2
쌍성총관부를 공격하다
국내 문제를 해결한 공민왕은 원에게 빼앗긴 고려의 영토를 다시 찾고자 하였어요. 대표적으로 쌍성총관부를 공격하여 원에게 빼앗겼던 철령 이북의 땅을 되찾았지요.쌍성총관부는 고려가 원에 맞서 한창 싸우던 1258년에 설치되었어요. 몽골군이 동여진을 공격하다가 지금의 함흥 지방에 이르렀을 때, 그 지역 주민이 고려 정부에 반란을 일으켜 원에 투항하였어요. 이에 원은 이 지역에 쌍성총관부를 두고 직접 통치하였어요. 그렇게 하여 고려를 견제함은 물론 동북면의 여진족까지 통제하는 효과까지 노렸지요.고려는 그동안 여러 차례 이 지역을 다시 찾고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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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
08-27
1
공민왕과 함께 고려 개혁이 멈추다
힘차게 고려를 개혁해 가던 공민왕의 앞길을 가로막는 일이 벌어졌어요. 북쪽으로는 홍건적이, 남쪽으로는 왜구가 고려를 침략해 온 것이에요. 홍건적은 원이 쇠약해진 틈을 타서 일어난 한족의 농민 반란군이었어요. 원의 군대에 쫓겨 홍건족이 고려의 국경을 넘어 개경까지 침입해 오자, 공민왕은 멀리 안동까지 피란을 가기도 하였어요.왜구는 일본의 해적으로, 일찍부터 물자가 풍부한 해안 지방에 침입하여 노략질을 하였어요. 공민왕 때에는 왜구에게 강화도까지 약탈당했고, 개경까지 위협을 받을 정도였어요. 두 외적의 침입으로 고려는 큰 혼란을 겪었어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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