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간도에 서전서숙을 세우다
본문
이상설은 관직을 그만두고 본격적으로 국권 회복 운동에 앞장서기로 다짐하였어요. 그는 이회영, 이동녕 등의 상동교회 동지들과 함께 민족운동의 방법을 논의하였지요. 그 결과 국외에서 세력을 키워 일본과 독립전쟁을 해야한다고 판단했어요.
1906년(고종 43) 이상설은 이동녕과 함께 비밀리에 출국해 중국 상하이를 거쳐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로 갔어요. 그리고 북간도 용정촌에 터를 잡았어요. 이곳은 이미 수많은 우리 동포들이 자리 잡고 있었고, 일본의 눈을 피하기도 쉬웠으며, 러시아와의 교섭도 편리한 지역이었지요.

용정 서전서숙과 서전서숙의 옛터 표지석(현재 용정실험소학교)
독립기념관
이상설은 용정촌에 ‘서전서숙’이라는 학교를 열었어요. 그는 숙장(교장)으로서 경비까지 책임지며 무상교육으로 학교를 운영하였어요. 서전서숙에서는 역사·지리·수학·국제법·정치 등의 신학문을 교육했어요. 이상설도 직접 학생들에게 수학 등을 가르쳤지요.
무엇보다 이곳에서 가장 중점을 둔 것은 독립사상을 고취하는 항일 민족교육이었어요. 그러나 서전서숙은 일본의 감시와 방해로 1년 만에 문을 닫고 말았어요.
한편 서전서숙의 설립은 여기저기에서 수많은 항일 민족학교가 세워지는 계기가 되었어요. 명동촌에서는 명동학교가 문을 열었고, 이어서 창동학교, 정동학교, 신흥강습소 등이 설립되었어요. 사실상 서전서숙은 해외에 설립된 최초의 근대교육 기관인 동시에 항일 독립운동의 씨앗이 되었던 셈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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