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설

헤이그 만국평화회의 특사로 활동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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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7년(순종 1) 4월 이상설은 고종 황제의 밀서를 받았어요. 이준, 이위종과 함께 네덜란드의 수도 헤이그에서 열리는 만국평화회의에 참석하여 일본의 침략상을 폭로하고, 을사늑약의 부당함과 무효를 알려 국제 사회에 도움을 구하라는 것이었지요.


1907년 사절단의 정사인 이상설은 약속한 대로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사절단 부사인 이준을 만났어요. 그들은 다시 시베리아 횡단 열차를 타고 당시 러시아 수도 상트페테르부르크에 가서 통역 겸 부사인 이위종과 합류했어요.


이상설 일행은 일본의 삼엄한 감시를 뚫고 장장 64일간의 험난한 여정 끝에 네덜란드 헤이그에 도착하였어요. 그들은 곧바로 호텔에 태극기를 게양하고 활동을 시작했어요. 이들의 목표는 을사늑약이 일본의 강요에 의한 것임을 폭로해 조약의 부당함을 세계만방에 알리고 조약을 무효화 하는 것이었어요.


그들은 대한제국 대표 자격으로 주최국 네덜란드에 만국평화회의 참석을 요청하였어요. 그러나 네덜란드는 세계 여러 나라가 이미 을사늑약을 승인한 이상 대한제국 정부의 자주적인 외교권을 인정할 수가 없다는 이유를 들면서 거부하였어요. 미국·프랑스·중국·독일 등 각국 대표들에게도 협조를 구했지만 모두 실패하고 말았지요.

한편 일본은 특사단이 공식회의에 참석하지 못하도록 방해하였어요. 고종을 협박하여 특사를 보낸 적이 없다는 선언을 받아내고, 을사늑약은 원만하게 체결된 것이라는 전보를 헤이그에 보냈어요.


하지만 이상설 일행은 포기하지 않았어요. 그곳의 언론을 활용하여 특사들의 활동을 보도하도록 했어요. 조선의 사정에 우호적인 외국인 기자들을 만나는 행운도 있었어요. 일제의 침략상과 대한제국의 입장을 담은 성명서를 의장과 각국 대표들에게 보냈고, 『만국평화회의보』에 발표하였어요.


특사들의 활동 상황은 『런던 타임스』나 『뉴욕헤럴드』지에 실리기도 했어요. 이러한 노력으로 특사단은 각국 신문기자단이 주최한 국제협회에 초청되었어요. 이곳에서 그들은 이상설이 작성하고 이위종이 프랑스어로 번역한 ‘대한제국의 호소’라는 제목으로 연설을 하였지요. 이 연설문은 당시 커다란 화제를 불러일으켰어요.


비록 헤이그 특사 활동이 일제의 교활한 방해 공작으로 공식적으로 인정받지 못했지만, 약소국 중에서 이렇게까지 절실하게 지속적으로 국권 회복 운동을 한 나라는 일찍이 없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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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국평화회의 회의장 앞에서 호소하고 있는 특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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