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업회를 통해 독립운동을 펼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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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0년 이상설은 일제의 요청을 받은 러시아 당국에 의해 니콜리스크로 유배당했어요. 하지만 금방 풀려나 1911년 블라디보스토크로 다시 돌아왔어요. 그는 우리가 비록 강대국 사이에 낀 약한 나라이지만, 스스로 강해져야만 한다 생각했어요. 그리고 이제까지와는 다른 방식으로 독립운동을 펼쳐야겠다고 결심했어요.
1911년 이상설은 최재형, 홍범도 등이 만든 권업회에 참여했어요. 권업회는 독립운동을 지원하면서도 동포들의 권익 향상에 많은 힘을 쏟았지요. 실업자가 된 동포들에게는 직업을 주었고, 저축을 장려했지요. 동포들끼리 서로 믿고 단합할 수 있도록 도왔어요. 권업회 활동은 동포들에게 무언가 할 수 있다는 정신을 불어넣어 주었어요.
권업회는『권업신문』을 발행하여 동포들의 권익과 의식 향상에도 힘썼어요. 이 신문은 러시아 지역은 물론 만주와 국내까지 보급되었지요.
그러나 『권업신문』은 일제와 러시아 당국에 의해 1914년 8월 30일 제126호를 마지막으로 폐간되었어요. 이상설은 책임자로서 최후까지 노력했으나 큰 벽 앞에서 또다시 좌절하고 말았지요.

권업회 활동과 『권업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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