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광복군정부를 세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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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4년 이상설은 이동휘, 이동녕 등과 함께 블라디보스토크에서 ‘대한광복군정부’를 세웠어요. 국권을 빼앗긴 이후 최초의 망명 정부라 볼 수 있지요. 13도의군에서부터 권업회와 광복군에 이르기까지 이상설과 함께 활동한 동지들을 기반으로 임시정부 체제를 구축했어요.
그는 대한광복군정부를 통해 정부 대 정부로서 일제와 본격적인 전쟁을 하고자 하였어요. 실로 국제 정세에 밝은 이상설이 아니면 생각하기 어려운 일이었지요.
그러나 예상과 달리 제1차 세계대전이 일어나자 러시아가 일본의 동맹국이 되어 우리 독립 투사들을 탄압하였어요. 결국 대한광복군정부와 권업회는 해체되었고, 『권업신문』간행도 중단되고 말았지요.
1915년 3월 이상설과 동지들은 중국 상하이로 갔어요. 그곳에서 박은식, 신규식 등과 함께 새로운 독립운동의 방향을 고민하였어요. 이들은 ‘신한혁명당’을 결성하고 광복군의 무장 활동과 대일 전쟁 방안을 논의하였어요.
이상설은 국내외에서 독립군 자금을 모금하고자 했어요. 그리고 고종 황제를 당수로 추대하여 국내외의 활동을 크게 확장하고자 하였지요. 하지만 밀정의 고발로 인해 신한혁명당의 활동은 모두 중지되고 말았어요.
1916년 연해주와 중국을 오가며 독립운동을 펼쳤던 이상설은 건강이 나빠져 그만 쓰러지고 말았어요. 그는 결국 1917년 4월 1일 47세의 젊은 나이에 절절한 유언을 남기고 순국하였어요.
“동지들은 합세하여 조국 광복을 기필코 이룩하라. 나는 조국 광복을 이룩하지 못하고 이 세상을 떠나니 어찌 혼인들 조국에 갈 수 있으랴. 내 몸과 유품, 유고는 모두 불태우고 그 재마저 바다에 날린 후에 제사도 지내지 말라.”
이상설은 어떤 심정으로 이런 유언을 남겼을까요? 연해주 우수리스크에 가면 러시아 지역 대표적 독립운동가인 이상설을 기념하여 세운 비가 있어요. 이상설이 남긴 유언을 마음에 새기며 그의 활동을 되짚어보면 독립을 열망했던 절절한 마음이 조금은 느껴질 것 같아요.

우수리스크 이상설 유허비와 이상설
독립기념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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