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군의 어머니로 불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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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주로 건너온 남자현은 독립군 부대인 서로 군정서에 가입했어요. 독립군들은 유일한 여성 대원이었던 남자현의 활동에 뜨거운 박수를 보냈지요.
무엇보다 그녀에게 고마움을 느끼며 따르던 사람들은 젊은 청년 독립군들이었지요. 그녀는 독립군들이 다치거나 아팠을 때 정성껏 치료하고 간호해 주었어요. 청산리 전투에 참여한 독립군 10여 명이 적에게 쫓겨 숨어 다니다 남자현의 집에 숨어들었어요. 그들 중 일부는 심한 부상을 입고 있었고, 겨울 추위에 대부분 동상까지 걸렸었지요.
남자현은 큰 독에 물을 반쯤 채운 뒤 들어앉아 있게 해 동상을 풀어 주고, 다친 곳을 치료해 주었어요. 따뜻한 음식도 대접해 주었어요. 마치 친어머니처럼 말이에요. 이후 그녀는 독립군의 어머니로 불리게 되었지요.

독립군을 치료하는 남자현
남자현은 여자교육회를 만들고, 교회도 세웠어요. 여성들을 교육하고, 믿음을 길러 주며 정신을 깨우쳐 주었어요. 또 각 독립운동 단체들이 통합 운동이 지지부진하자 독립운동 단체들을 찾아다니며 통합을 이끌어 냈어요.
그녀는 중국 땅까지 와서 독립운동을 하며 생각의 차이로 독립운동 단체들이 하나 되지 못하는 것이 너무 안타까웠어요. 이러한 분열을 막기 위해 두 차례나 손가락을 잘라 혈서를 써 자신의 독립 의지를 전했어요.
“우리가 이곳에 온 이유는 우리나라를 빼앗은 일본과 싸우러 온 것입니다. 같은 민족끼리 분열되어 갈등하려고 온 것이 아닙니다.”
그녀는 당시 ‘세 손가락의 여장군’으로 불렸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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