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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현, 독립군의 어머니로 불리다
남편이 의병 활동하다 세상을 뜨다
3·1 운동이 일어난 후 만주로 건너가다
독립군의 어머니로 불리다
손가락을 잘라 조선 독립의 뜻을 전하다
단식으로 일제에 저항하다 세상을 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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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현, 독립군의 어머니로 불리다
독립기념관(충남 천안시)“아들아, 이 돈을 받아라.”“이게 무슨 돈입니까?”“이 돈을 독립 축하금으로 바치도록 해라. 만약 네가 독립을 보지 못하거든 네 자손에게 똑같이 유언을 남기어라.”죽는 순간까지도 자신이 가진 돈을 독립 축하금으로 내놓은 이 분은 누구일까요? 그녀는 살아있을 때 어떤 일들을 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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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
08-31
5
남편이 의병 활동하다 세상을 뜨다
이 사람은 바로 일제 강점기 독립군의 어머니로 불렸던 남자현 선생이에요. 그녀는 1872년 경상북도 안동에서 태어났어요. 어려서부터 높은 벼슬을 지낸 아버지로부터 공부를 한 덕에 일찍 한글과 한문을 깨치고, 유학 관련 책을 두루 읽었지요.19세 되던 해 그녀는 안동 사람 김영주와 결혼을 했어요. 하지만 편안한 결혼생활을 하기에는 나라의 운명이 바람 앞의 등불과 같았어요. 1895년에는 일본이 왕비(훗날 명성황후)를 시해하는 일까지 벌어졌거든요. 나라를 구하고자 곳곳에서 의병들이 들고일어나 일본에 맞섰지요. 그녀의 남편도 의병에 참여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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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
08-31
4
3·1 운동이 일어난 후 만주로 건너가다
남편이 죽은 지도 어느덧 23년이 지났어요. 이제 그녀의 아들도 어엿한 청년이 되었지요. 그즈음 남자현의 운명을 바꾸어 놓는 일이 벌어졌어요. 바로 1919년에 일어난 3·1 운동이지요. 3·1 운동을 접한 그녀는 일본에 맞서 남편의 원수를 갚고 나라를 구하기 위해 나설 때가 되었음을 알았어요. 얼마 후 남자현은 아들과 함께 압록강을 건너 만주로 갔어요.“내 한 몸 편하자고 가는 것이 아니다. 그릇된 것을 바로 잡으려는 것이다.”만주로 건너갈 때 남자현의 나이는 48세였어요. 당시로는 자손들의 봉양을 받으며 집에 있을 나이였지요.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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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
08-31
3
독립군의 어머니로 불리다
만주로 건너온 남자현은 독립군 부대인 서로 군정서에 가입했어요. 독립군들은 유일한 여성 대원이었던 남자현의 활동에 뜨거운 박수를 보냈지요.무엇보다 그녀에게 고마움을 느끼며 따르던 사람들은 젊은 청년 독립군들이었지요. 그녀는 독립군들이 다치거나 아팠을 때 정성껏 치료하고 간호해 주었어요. 청산리 전투에 참여한 독립군 10여 명이 적에게 쫓겨 숨어 다니다 남자현의 집에 숨어들었어요. 그들 중 일부는 심한 부상을 입고 있었고, 겨울 추위에 대부분 동상까지 걸렸었지요.남자현은 큰 독에 물을 반쯤 채운 뒤 들어앉아 있게 해 동상을 풀어 주고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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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
08-31
2
손가락을 잘라 조선 독립의 뜻을 전하다
독립군을 뒷바라지하는 등 도움을 주는 역할을 하던 남자현은 이제는 직접 총을 들고 독립 투쟁에 앞장서기 시작했어요.1926년 4월 말 어느 날, 서울의 혜화동에 권총을 손에 들고 다부지게 입을 문 한 여인이 두 명의 남자들과 함께 나타났어요. 바로 남자현이었지요. 그들은 사이토 총독을 암살할 계획을 시행하려고 했지요.때마침 그날은 조선의 마지막 왕 순종의 장례식이 있는 날이었어요. 남자현은 사이토 총독이 올 것으로 생각했어요. 그래서 그를 암살하기 위해 작전을 짜고 기다리고 있었지요.하지만 그녀는 계획대로 총독을 암살할 수 없었어요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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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
08-31
1
단식으로 일제에 저항하다 세상을 뜨다
1933년 2월 말, 하얼빈 교외에 한 거지 차림의 여인이 바삐 걸어가고 있었어요. 바로 남자현이었지요. 그녀는 일본의 만주국 건국 기념일에 주만주국 일본 대사를 암살할 계획이었어요. 하지만 계획이 들통 나 그녀를 미행하던 일본 경찰에 붙잡히고 말았어요.“거지 할멈, 당신이 남자현이지!”일제 경찰에 체포된 남자현은 분했어요. 일제의 심장에 총을 겨누어 보지도 못하고 체포되고 말았으니 말이에요. 체포 당시 그녀는 죽은 남편의 피 묻은 옷을 속에 껴입은 채였다고 해요.체포된 남자현은 일본 영사관 유치장에 갇혔어요. 뜻을 이루지 못하고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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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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