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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규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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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규수
박규수, 개화사상의 씨를 뿌리다
늦은 나이 과거시험에 합격하다
진주 농민 봉기의 원인을 밝혀내다
미국 배 제너럴셔먼호를 불태우다
청에 사신으로 다녀오다
실학을 바탕으로 삼아 개화 사상가를 키워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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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규수, 개화사상의 씨를 뿌리다
헌법재판소(서울 종로구)“자네, 일본에 가서 근대 문물을 공부해보는 것이 어떻겠나?”“일본에 갈 수만 있다면 좋겠지요. 그런데 방법이 있나요?”“이번에 일본의 근대 문물을 보러 가는 시찰단이 있네. 그들을 따라가면 된다네.”1881년 일본에 가는 시찰단을 따라간 사람은 유길준이에요. 그는 우리나라 최초의 일본 유학생이지요. 유길준에게 일본에 가서 공부하라고 권한 사람은 누구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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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
08-31
5
늦은 나이 과거시험에 합격하다
유길준에게 일본 유학을 가라고 조언한 사람은 박규수예요. 유명한 실학자 박지원의 손자지요. 박지원은 청의 문물을 받아들여 조선의 상공업을 발전시켜야 한다고 생각한 북학파 실학자였어요. 김정희, 박제가와 같은 많은 제자도 길러냈지요.그런데 박규수는 할아버지에게 직접 실학사상을 배울 수는 없었어요. 그가 태어나기 2년 전 할아버지가 세상을 떠났기 때문이에요. 그래도 학문을 이어받고자 노력했던 아버지 덕분에 할아버지의 실학사상에 대해 배울 수 있었어요.“자네의 학문 수준이 매우 높은 것 같네. 내가 비록 자네보다 훨씬 나이가 많지만, 학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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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9
08-31
4
진주 농민 봉기의 원인을 밝혀내다
1850년에 왕이 된 철종은 약 13년 동안 나라를 다스렸지만 실제로 나랏일은 세도 가문인 안동김씨의 뜻대로 이루어졌어요. 이 틈을 타 탐관오리들은 여러 가지 옳지 못한 방법으로 많은 세금을 거두어들였어요. 그래서 백성들의 생활은 무척이나 어려웠어요.백성들은 관아 벽에 글을 써 붙이거나 밤에 횃불을 들고 자신들의 어려움을 알리기 위해 노력했지만 생활이 나아지지 않았어요. 더는 참을 수 없었던 백성들은 마침내 1862년에 전국적으로 봉기를 일으켰어요. 그 중 대표적인 것이 진주 농민 봉기랍니다.“경상도 지방에 암행어사로 다녀온 경험이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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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6
08-31
3
미국 배 제너럴셔먼호를 불태우다
1866년, 평양의 대동강에서 미국 배 제너럴셔먼호가 불에 탔어요. 배에 타고 있던 선원들도 대부분 죽임을 당했지요. 이와 같은 일을 앞장서서 지휘한 사람이 박규수에요. 박규수가 평안도 관찰사였거든요.그런데 박규수는 왜 제너럴셔먼호를 불태웠던 것일까요? 제너럴셔먼호는 중국에서 자명종과 비단 등을 싣고 우리나라의 쌀, 인삼 등과 교역을 하러 온 상선이었어요. 제너럴셔먼호는 중국 배의 안내를 받으며 대동강을 따라 평양까지 갈 수 있었어요.당시 조선은 고종을 대신하여 흥선 대원군이 나랏일을 도맡아 하고 있던 때에요. 흥선 대원군은 서양세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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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7
08-31
2
청에 사신으로 다녀오다
박규수는 할아버지인 박지원처럼 중국에 다녀왔어요. 다른 점이 있다면 박규수는 나라를 대표하는 외교관의 자격으로 청을 다녀온 것이지요. 그것도 1861년과 1872년 두 차례에 걸쳐서 말이에요.“할아버지가 다녀오신 청에 가게 되다니...”1861년 청에 간 것은 아편 전쟁으로 피난을 간 청 황제의 안부를 살피기 위해서였어요. 청은 영국과 프랑스 군대의 공격을 받아 수도인 베이징을 빼앗겼어요. 이때 청 황제는 어쩔 수 없이 여름별궁이 있던 열하로 피난을 갈 수밖에 없었어요. 박규수는 중국에 가서 80여 명의 중국인과 만나며 교류하며 자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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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7
08-31
1
실학을 바탕으로 삼아 개화 사상가를 키워내다
두 번째 중국 방문에서 돌아온 박규수는 흥선 대원군에게 나라의 문을 열고 외국과 교류해야 된다고 건의했어요. 그러나 그의 뜻은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얼마 후 관직에서 물러나게 되었어요.그 후 박규수는 한양 북촌에 있는 자기 집 사랑방에서 양반 자제들에게 학문을 가르치는 일에 더욱 힘을 기울였어요. 그 내용은 주로 할아버지의 북학파 실학사상과 자신이 중국에 가서 보고 배운 것이었지요. 이때 모여서 그에게 근대 문물을 배운 사람들은 김옥균, 박영효, 유길준, 김윤식 등이에요.박규수와 개화당 사람들그들은 훗날 개화파가 되어 조선이 근대적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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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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