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동주 시인의 숨결을 느낄 수 있는 하숙집 건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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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화여자고등학교를 뒤로 하고 골목길을 따라 좀 더 들어가면 시인 윤동주가 살았던 옛 하숙집 건물을 만날 수 있어요. 윤동주 시인이 누구냐고요? 다음 시 한 편을 읽어 볼래요?
계절이 지나가는 하늘에는
가을로 가득 차 있습니다.
나는 아무 걱정도 없이
가을 속의 별들을 다 헤일 듯합니다.
가슴 속에 하나 둘 새겨지는 별을
이제 다 못 헤는 것은
쉬이 아침이 오는 까닭이요,
내일 밤이 남은 까닭이요,
아직 나의 청춘이 다하지 않은 까닭입니다.
한 번 읽었거나 어디선가 들어본 시이지요? 이 시는 많은 사람들로부터 사랑받고 있는 윤동주의 ‘별 헤는 밤’ 중 일부입니다. 윤동주는 1917년 중국 길림성 화룡현 명동촌에서 태어났어요. 이후 윤동주는 1938년 연희전문학교(현재의 연세대학교) 문과에 입학하였고, 같은 학과 후배 정병욱과 아주 친하게 지냈어요.
이후 일본에서 유학 생활을 하던 윤동주는 일제에 의해 독립운동을 했다는 죄목으로 감옥살이를 하다가 그만 세상을 떠났어요. 정병욱은 윤동주 시인이 죽은 뒤 그의 시를 세상에 널리 알리는 활동을 했어요.
윤동주는 연희전문학교에 다닐 때 후배 정병욱과 서촌에 있는 하숙집에서 하숙 생활을 했어요. 원래 이곳은 소설가 김송의 집이었는데, ‘별 헤는 밤’, ‘자화상’, ‘또 다른 고향’ 등 지금까지도 사랑받고 있는 윤동주의 대표적인 시들이 이즈음 만들어졌다고 해요.
한편, 옛 윤동주 하숙집 담장 위로 우산들이 펼쳐져 있는데, 이 우산들에는 시 ‘별 헤는 밤’의 일부가 적혀 있어요. 여러분들도 한 번 우산을 잘 살펴보세요. 아쉽게도 집의 원형이 그대로 남아 있지 않지만, 서촌 길목에는 그의 자취가 남아 있는 듯하네요.

윤동주 하숙집 터
인왕산 능선 아래 서촌에 맞닿아 있는 수성동은 물소리가 맑다고 해서 조선 시대에 ‘수성동(水聲洞)’이라고 불렸어요. 당시 이름난 명승지였던 수성동 계곡은 진경산수화의 대가인 정선의 ‘수성동’이라는 작품의 배경이 되기도 했어요. 조선 시대부터 선비들의 여름 휴양지로 알려진 수성동 계곡은 현재 현대식 건물인 빌라와 조선 시대 한옥집들이 조화를 이루고 있어요.
수성동 계곡의 입구에 서면, 정선이 그렸던 ‘수성동’이라는 작품과 같은 풍경을 볼 수 있어요. 조선 후기 화가 정선이 서 있던 자리에 여러분이 서서 같은 풍경을 바라보고 있다고 생각해 보세요. 시간을 뛰어넘어 묘한 감정을 느낄 수 있을 거예요. 또한 수성동 계곡을 걷다 보면, 어디선가 옛 선비들이 나타나 말을 걸 것 같은 느낌도 들 거예요. 그만큼 정선의 그림 ‘수성동’과 현재의 수성동 계곡 풍경은 크게 변한 것이 없답니다.
현재는 수성동 계곡에서 청계천까지 이어지는 물길이 끊어졌지만, 원래는 수성동 계곡의 물이 청계천을 지나 한강까지 이어졌다고 해요. 참, 수성동 계곡에는 지금도 도롱뇽이 살고 있어요.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도롱뇽은 1급수에만 산다고 하니, 그만큼 수성동 계곡의 물이 깨끗하다는 것이겠지요. 주변 환경은 많이 변했지만, 이곳 수성동 계곡 일대는 그렇게 조선 시대와 대한민국이 함께 섞여 있다고 할 수 있지요.

수성동 계곡과 정선이 그린 ‘수성동(水聲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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