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신정변에 참여하였으나 실패로 끝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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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재필은 1864년에 전라남도 보성의 외가에서 서광효의 둘째 아들로 태어났어요. 이후 친가가 있는 충청남도 논산에서 성장하다가 친척 서광하의 양자로 들어갔어요. 아들이 없는 친척에게 양자를 보내는 것은 조선 시대에 흔히 있던 일이에요. 일곱 살이 되던 해 서재필은 한성(지금의 서울)에 있는 외삼촌 김성근의 집에 보내져 그곳에서 한학을 배우며 어린 시절을 보내게 되었어요.
외삼촌 집이 있었던 한성 북촌은 김옥균, 서광범, 박영효 등 개화지식인들도 살고 있었어요. 서재필은 집에서 한학을 배우기도 하였지만 이들과 어울리면서 근대 문물과 지식을 가까이할 수 있었지요. 또한 일본을 자주 드나들던 승려 이동인으로부터 당시 나라밖 소식도 듣게 되면서 세상을 보는 시야를 넓힐 수 있었어요.
1882년 서재필은 과거 시험에 합격을 했어요. 얼마 후 국방을 튼튼히 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김옥균의 권유를 받고 일본에 건너가 군사학을 배우기로 결심했어요. 그래서 이듬해 다른 동료 14명과 함께 일본 도쿄에 있는 도야마 육군학교 입학했어요. 이곳에서 그는 근대적인 군사기술과 지식을 배운 뒤 약 1년 만에 귀국했어요.
김옥균, 서광범, 박영효 등 급진 개화파라 불린 세력은 당시 청나라의 정치 간섭에서 벗어나 근대적인 개혁을 빨리 이루고자 했어요. 마침 일본도 군사적 지원을 약속했어요. 마침내 급진 개화파는 1884년에 정변을 일으켰어요. 이를 갑신년(1884년)에 일어난 정변이라고 해서 ‘갑신정변’이라고 해요.
서재필도 일본에서 함께 공부한 동료들을 이끌고 여기에 참여하였어요. 급진 개화파는 정부의 높은 관리를 제거하고 새로운 정부를 만든 후에 자신들의 개혁 의지를 담은 개혁안을 발표했어요. 그러나 청나라는 조선에 대한 영향력을 잃지 않으려고 재빨리 군대를 보내 정변을 일으킨 세력을 공격했어요.
결국 갑신정변은 청나라 군대에 의해 3일 만에 실패로 끝나고 말았어요. 정변을 일으켰던 김옥균, 박영효, 서광범, 서재필은 일본으로 망명했어요. 한편 서재필은 다른 동료들처럼 반역자로 몰려 그의 부모님, 아내, 형을 비롯해 어린 아들까지 죽는 비극을 맞이했어요.


일본으로 망명한 직후 급진 개화파
(왼쪽부터 박영효, 서광범, 서재필, 김옥균)
국사편찬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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