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재필

국내로 돌아와 독립신문을 발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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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4년 조선에서 근대적인 개혁인 갑오개혁이 추진되면서 정부는 개혁에 필요한 인재들이 필요했고, 당시 일본에서 돌아와 개혁을 이끌던 박영효는 미국에 있는 서재필에게 귀국을 요청했어요.


마침 이때 10년 전 갑신정변을 일으킨 주도자들에 대한 죄도 용서가 되었어요. 조선 정부의 공식 요청에 서재필은 조선의 근대적인 개혁에 힘을 보태겠다는 큰 결심을 하고, 망명을 떠난 지 11년 만인 1895년 12월 조선으로 돌아왔어요.


조선으로 돌아온 서재필은 자신을 조선인이 아니라 필립 제이슨(Philip Jaisohn)이라는 미국인으로 소개하였어요. 그는 외국인 거주지에서 살면서, 10년 계약에 월급 300원이라는 당시로서는 최고의 대우를 받으며 중추원 고문을 맡았어요. 당시 중추원은 입법 기관으로 여러 가지 법을 만드는 정치기구였어요.


서재필은 신문을 만들어 백성들에게 근대적인 지식을 전달하고 정부의 개화 정책을 널리 알릴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어요. 서재필의 생각을 들은 정부 관리들도 신문 발행을 돕겠다고 했어요. 드디어 서재필은 정부의 지원을 받아 1896년에 독립신문을 만들었어요.

독립신문은 네 쪽으로 발행되었는데, 나라 안팎의 소식과 자주독립 정신을 일깨워 주는 글을 실었어요. 또 정부와 관리들의 잘못을 비판하는 글을 실어 국민이 쉽게 나랏일을 알도록 하였어요. 그중 한 쪽은 영어로 인쇄하여 외국인들도 우리나라의 사정을 알 수 있도록 하였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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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신문

국립중앙도서관




이어 서재필은 개화 지식인들과 함께 독립 협회를 만들었어요. 독립 협회는 백성의 성금을 모아 자주독립을 상징하는 독립문을 세웠어요.

또 누구나 참여할 수 있는 대중 집회인 만민 공동회를 열어 당시 러시아가 조선의 정치를 간섭하고 있는 상황을 날카롭게 비판하였어요. 그리고 서양 강대국들이 조선에서 경제적 이익을 얻을 수 있는 여러 권한을 빼앗아가는 것도 비판하며 나라의 정치를 바로잡으려고 하였어요.


특히 서재필은 배재학당 등 여러 근대 학교에 가서 학생들을 위한 특강을 하면서 큰 보람을 느꼈어요. 그는 조선이 발전하기 위해서는 근대 교육을 통해 인재를 많이 길러내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했어요. 그리고 자신의 강의를 듣는 학생들에게 기회가 되면 미국에 유학을 떠나 더 넓은 세계를 접하고 올 것을 강조하였어요.


서재필이 독립신문의 논설을 통해 정부의 잘못된 정책을 비판하자 정부의 보수적인 관리들은 서재필을 비난하기 시작했어요. 결국 정부는 서재필을 중추원 고문 직책에서 해임시켰어요. 이렇게 해서 서재필은 1898년 다시 조국을 떠나 미국으로 돌아가게 되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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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재학당에서 강의하는 서재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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