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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균관
조선 시대 최고의 배움터, 성균관
옛날에도 학교가 있었을까요?
성균관에는 여러 가지 시설들이 있어요
성균관은 유생들이 공부하는 곳이에요
성균관 유생들은 이렇게 공부하였어요
지방에는 향교가 있어요
역사 속 작은 이야기: 성균관 유생들이 수업을 거부하였다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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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시대 최고의 배움터, 성균관
성균관 명륜당(서울 종로구)문화재청“정말 축하하네. 이번에 그 어렵다는 성균관에 입학했다고?”“고맙네. 난 과거 공부도 열심히 할 생각이네.”“나도 자네처럼 성균관에 꼭 들어갈 것이네.”옛날부터 지금까지 교육은 나라의 미래를 좌우한다고 생각해 매우 중요하게 여겨 왔어요. 조선 시대에는 최고 교육 기관으로 성균관이라는 학교가 있었어요. 조선 시대 성균관은 어떤 곳이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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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
08-28
6
옛날에도 학교가 있었을까요?
어느 시대나 나라에 필요한 인재를 키우기 위해 교육 기관을 설치했어요. 고구려의 태학, 신라의 국학, 고려의 국자감 등이 그런 곳이었어요. 고려 시대의 국자감이 고려 말기 공민왕 때 성균관으로 이름이 바뀌었고, 이것이 조선 시대로 이어졌어요.조선은 나라를 다스릴 기본 학문을 유학으로 정하였어요. 그래서 조선의 교육 기관은 유학에 바탕을 두고 인재들을 길러 내고자 힘썼지요.“나라가 잘 되려면 똑똑한 관리들이 많아야 한다. 한양에 성균관을 지어 전국의 인재를 모으도록 하라.”조선을 세운 태조 이성계는 한양을 새 도읍지로 정하고 궁궐과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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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
08-28
5
성균관에는 여러 가지 시설들이 있어요
성균관에는 강의실을 비롯해 도서관, 기숙사, 식당 같은 시설이 잘 갖추어져 있었어요. 성균관 명륜당은 유생들이 수업을 받고 공부를 하는 건물로 오늘날 학교 교실과 같은 곳이에요. 명륜당 뒤의 존경각은 성균관의 도서관으로 쓰였지요. 명륜당 앞뜰에는 동쪽과 서쪽에 각각 동재와 서재가 있어 서로 마주 보고 있어요. 동재와 서재는 학생들이 먹고 자고 생활하는 기숙사와 같은 곳이었어요.존경각문화재청동재문화재청서재문화재청명륜당 건너편의 큰 건물은 대성전이에요. 공자를 비롯한 여러 유학자들에게 제사를 지내는 곳이지요. 대성전에는 공자의 위패가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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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6
08-28
4
성균관은 유생들이 공부하는 곳이에요
조선이 건국한 후에도 성균관의 직제는 고려의 것을 그대로 이어받았어요. 그러다 세조 관제 개혁 때 정비하여 정2품 상당의 대신 가운데 학식이 뛰어난 관리들에게 성균관 교관을 맡겼지요. 그런 성균관에는 아무나 들어가지 못하고 대체로 양반 가문의 남자들에게 기회가 주어졌어요. 다른 경로를 통해 들어오기도 했지만, 대개 성균관의 학생이 되려면 소과인 생원시와 진사시라는 시험에 합격해야 했지요.생원시는 경전을 읽고 해석하는 시험이고, 진사시는 글을 짓는 시험이에요. 초시와 복시의 두 단계로 이루어진 시험을 통과하면 각각 ‘생원’과 ‘진사’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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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7
08-28
3
성균관 유생들은 이렇게 공부하였어요
100명이 넘는 유생들은 북소리에 따라 움직였어요. 이른 새벽 북소리가 한번 울리면 잠자리에서 일어나야 했지요. 북소리가 두 번 울리면 새벽 공부로 하루를 시작하였지요. 북소리가 세 번 울리면 밥 먹으러 식당에 갔어요.성균관 유생들은 아침저녁으로 식당에 가서 꼭 이름을 적어야 했어요. 식당 입구에는 출석부가 있어서, 여기에 동그랗게 표시를 해야 했어요. 이것을 ‘원점’이라고 해요. 날마다 아침과 저녁, 하루 두 번 출석을 표시하면 원점 1점을 딸 수 있어요. 원점이 300점이 넘어야 대과를 볼 수 있었어요. 원점 300점이란 곧 성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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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
08-28
2
지방에는 향교가 있어요
나주향교 대성전과 나주향교 내부 모습(전남 나주시)문화재청성균관이 한양에 있는 공교육 기관이라면 지방에는 향교가 있었어요. 향교는 지금의 국립 중·고등학교라 할 수 있어요.향교에 입학한 16세 이상의 학생을 교생이라 불렀어요. 교생 가운데 생원시, 진사시를 치러 합격한 사람이 성균관에 입학할 수 있었지요. 향교는 성균관으로 가기 위한 일종의 징검다리였던 셈이지요.향교에서는 『소학』과 사서오경 등을 배웠어요. 『소학』은 일상생활에서의 예의범절과 충신과 효자의 도리를 담은 도덕 교과서였어요. 사서오경은 『논어』, 『맹자』, 『중용』,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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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
08-28
1
역사 속 작은 이야기: 성균관 유생들이 수업을 거부하였다고요?
성균관 유생들은 정치 문제에도 관심이 많았어요. 나랏일이 잘못되어 간다고 생각하면 상소로 자신들의 뜻을 적극 알렸어요. 상소가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단체 행동으로 나설 때도 많았어요.어느 날이었어요. 다른 때와 마찬가지로 성균관 유생들은 열심히 공부하고 있었지요. 그런데 몇몇 유생들이 심각한 얼굴로 삼삼오오 모여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어요.“아니, 백성들도 함부로 아내를 내치지 않는데, 어찌 나라의 어머니라 할 수 있는 중전마마를 내쫓을 수 있단 말인가?”“그러게 말일세. 더군다나 지금의 중전마마께서는 덕이 높고 바른 분이지 않은가?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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