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채호

독립을 위해 길이 남을 명문장을 쓰다

본문

1922년 말의 어느 날, 의열단 단장인 김원봉이 신채호를 찾아왔어요. 의열단은 항일 독립운동 단체 가운데서도 활동이 가장 두드러졌어요. 조선총독부의 경찰서와 중요한 일본 기관을 폭탄으로 파괴하고, 조선 총독과 고관들, 친일파, 일본 경찰이나 군대 지휘자를 암살하는 것이 의열단의 독립운동 방법이었어요. 김원봉은 의열단이 세운 계획을 신채호에게 설명하고 도움을 청하고자 했어요.


“선생님께서 의열단의 투쟁 선언문을 만들어 주셨으면 합니다.”


의열단은 의열 투쟁에 대한 규범을 갖고 있지 못했어요. 때문에 일본 사람들은 그들을 마치 테러단처럼 생각하고 있었어요.


신채호는 흔쾌히 김원봉의 부탁을 들어 주었어요. 그는 상하이에 있는 의열단 본부의 폭탄 제조하는 곳을 둘러보았어요. 그리고 이곳에 머물며 역사적인 「조선혁명선언」을 쓰기 시작하였지요.


이렇게 한 달여 만에 의열단의 독립운동 기준이 되는 「조선혁명선언」이 완성되었어요. 이 글에서 그는 일본의 야만적 행위를 낱낱이 따져 가며 비판했어요. 또한 일제에 타협하려는 모든 사람을 우리의 ‘적’으로 여겼어요.

강도 일본이 우리의 국호를 없이 하며, 우리의 정권을 빼앗으며, 우리의 생존 필수 조건을 모두 박탈하였다. … (중략) … 이상의 이유에서 우리의 적인 강도 일본과 타협하려는 자나, 강도 정치 아래에서 기생하려는 생각을 하는 자나 모두 다 우리의 적임을 선언하노라! … (중략) … 강도 일본의 통치를 타도하고 우리 생활에 불합리한 일체의 제도를 개조하여, 인류로서 인류를 압박치 못하며, 사회로써 사회를 압박치 못하는 이상적 조선을 건설할지니라.


의열단 단원들은 그 내용과 문장에 감동하였어요. 그들은 이 선언문으로 더욱 힘을 내서 독립운동을 하였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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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채호 어록비(충남 천안시)




신채호는 민족의 적을 확실히 정의한 후에 독립운동의 방법을 제시하였어요. 당시 많은 독립운동가는 외교를 통해, 외국의 힘을 빌려 독립을 이루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그는 남의 힘을 빌려 독립을 이룬다면 또다시 다른 나라의 지배를 받게 된다고 여겼어요.


이런 상황이 되풀이되지 않으려면 민중 스스로 총칼을 들고 싸워야 한다고 주장했어요. 독립운동가들의 활동에 영향을 끼친 신채호의 「조선혁명선언」은 이 시기 독립선언문 중 가장 뛰어난 명문장이라 평가받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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