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돌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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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미의병, 그 속에 신돌석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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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 각지에서 봉기한 의병은 대부분 그 고을의 유명한 유생들이 이끌었어요. 이들은 친일 개화파의 개화 정책에 동조하며 단발을 한 관료들을 처단하였어요.


개화 정책으로 새로 만들어진 우편소를 습격하고 전신선을 파괴하기도 했어요. 그리고 이를 방어하던 관군과 일본군을 상대로 치열하게 전투를 벌였지요. 이들 의병 속에 신돌석도 있었어요.

신돌석은 1878년 지금의 경상북도 영해(지금의 영덕)에서 태어났어요. 원래 이름은 신태호이지만 아이 때의 이름인 돌석으로 더 널리 알려졌어요.


신돌석은 어릴 때부터 체격이 크고 기운이 셌다고 해요. 19세가 되던 해(1896년) 신돌석은 고향에서 100여 명의 동지를 모아 의병운동을 시작했어요.


관군과 일본군에 격렬하게 저항하던 의병들은 여러 차례 승리를 거두었어요. 그러나 병력과 무기가 부족해 1년여 후에는 대부분 해산했어요. 이때 신돌석도 의병 부대를 해산하였어요. 그리고 홀로 10여 년 동안 전국을 돌아다니며 뜻을 함께할 사람들을 만나 뒷날을 준비했어요.


신돌석은 27세가 되던 1904년 울진군 평해에 있는 월송정에 올라 시 한 편을 읊었어요. 이때는 러일 전쟁이 일어나 우리나라 땅이 남의 나라의 전쟁터가 되었고, 일본의 힘 앞에 민족의 운명이 벼랑 끝에 몰려있는 상황이었어요.


누각에 오른 나그네 갈 길을 잊고서

나뭇잎이 다 떨어진 나무가

가로누운 단군의 터전을 한탄하노라

남아 27세에 이룬 일이 무엇인가

문득 가을바람이 부니 감개만 이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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