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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돌석, 주막 앞에서 의병을 일으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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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6년, 을사늑약에 대한 소식을 들은 신돌석은 스스로 의병장이 되어 의병을 일으켰어요. 평민 출신 신돌석이 의병을 일으킨 장소는 그의 집에서 100미터쯤 떨어진 주막 앞이었어요. 양반 유생들이 대부분 서원이나 향교에서 의병을 일으키는 모습과는 무척 달랐지요.


“포악한 왜놈들이 황상 폐하를 협박하여 조선을 차지하려 하오! 나라가 위급한데 내 한목숨이 어찌 아깝겠소!”


“옳소! 와! 와!”


“나를 따라 우리 땅에서 왜놈들을 몰아냅시다!”


신돌석을 따르던 의병들은 대부분 농민이었어요. 농민 이외에도 상인, 포수, 그리고 양반 출신들도 여럿 참여했지요. 신돌석은 여러 계층의 사람들을 이끌 수 있는 인물이 되어 있었던 것이에요. 신돌석의 명성에 많은 백성이 몰려와 한때는 의병의 수가 3,000여 명이 넘기도 하였어요.


신돌석 의병 부대에게 가장 급한 일은 무기를 확보하는 것이었어요. 그래서 청송·울진·평해·영해·영덕 등 경상북도 지역의 관아를 먼저 공격해 무기 창고를 털어 총과 화약, 탄환을 마련했어요.

무기가 준비되자 신돌석은 울진과 삼척을 주공격 대상으로 삼았어요. 특히 울진은 신돌석 의병 부대가 수차례에 걸쳐 기습 작전을 벌인 곳이었어요. 동해안의 여러 고을 중에 울진은 일본인이 일찍부터 발을 붙이기 시작한 곳이었어요. 울진을 차지한 일본인 어부들은 잠수기를 이용해 전복과 해삼 등 해산물을 쓸어갔어요.


잠수기를 사용하던 일본인들은 우리나라 어부들보다 10배 이상 많은 수산물을 채취할 수 있었어요. 가난한 우리 어부들의 원성이 하늘을 찔렀죠. 일본인들이 동해안의 어장을 빼앗고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던 신돌석은 울진을 주공격 대상으로 삼은 것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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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무서와 우편소를 공격하는 의병들(신돌석장군기념관)




의병 부대는 울진을 공격해 일본인이 살던 집 수십 채를 불태웠어요. 일본인의 집을 공격하다가 관군들과 전투를 벌이기도 하였지요. 그리고 삼척 지역을 공격하여 일본 배 9척을 깨부수기도 했어요.

일본인을 위해 만들어진 경무서(파출소)나 우편소 등도 의병들의 공격 목표였어요. 이러한 시설들을 없애 일본인들이 발을 붙일 수 없도록 했어요. 무기가 떨어지면 후퇴했다가 다시 준비되면 울진과 삼척의 일본인들을 공격하는 일이 반복되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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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돌석 의병 부대의 활동 지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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