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돌석

의병 부대의 해산과 장군의 어처구니없는 죽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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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8년 9월 이후, 신돌석 의병 부대의 활동은 눈에 띄게 줄어들었어요. 일본군의 수가 늘어나는 만큼 의병들이 활동할 수 있는 지역은 계속 줄어들었어요. 일본군의 대규모 작전으로 의병의 수도 줄어들고 무기와 식량을 구하는 것도 갈수록 어려워졌어요.


게다가 매서운 겨울이 다가오고 있었지요. 어쩔 수 없이 신돌석은 후일을 약속하며 의병들에게 모두 살길을 찾아 떠나도록 명령했어요.


의병 부대를 해산하고 신돌석은 고향 근처 마을로 갔어요. 마을에는 옛 부하 김상열 형제가 살고 있었어요.

“장군, 일본군의 눈을 피해 참으로 잘 오셨소. 오늘 밤은 우리 집에서 편히 쉬세요.”


“동지! 이렇게 살아 볼 수 있어서 좋소.”


“오늘 밤은 술이나 한잔하면서 옛 기억이나 나누시면 어떨까요?”


오래간만에 가까운 사람을 만난 신돌석은 깊이 안심을 했어요. 그러나 김상열 형제의 생각은 달랐어요. 일본군이 내건 어마어마한 현상금에 욕심이 났어요. 그래서 술에 독을 타서 장군을 깊은 잠에 빠뜨렸어요. 맨정신으로는 장군의 힘을 이겨낼 자신이 없었거든요.


김상열 형제는 깊이 잠든 신돌석을 살해했어요. '태백산 호랑이'답지 않게, 그것도 옛 부하의 손에 당한 어처구니없는 죽음이었어요.


신돌석! 그는 한말 항일 의병 대장 중에서도 특별한 존재였어요. 일본의 침략에 맞서 의병을 일으킨 사람 대부분이 양반 출신이었는데, 그는 평민 출신임에도 불구하고 양반을 비롯한 많은 백성의 지지를 받았어요. 의병항쟁을 한 시기는 채 3년이 되지 않았지만, 그는 단 하루도 편히 쉬지 않고 태백산맥의 깊고 높은 산을 오르내리며 일본군과 맞서 싸웠지요.

신돌석 장군이 목숨을 잃은 지 1년 정도 지나면서 일본군의 대규모 작전으로 국내의 의병항쟁은 크게 약화되었어요. 많은 의병이 희생되었고, 의병 중 일부는 머나먼 만주로 이동하여 독립군이 되었어요. 또 일부는 국내에서 비밀결사대를 만들어 항쟁을 멈추지 않았지요. 나라를 위하는 마음에는 위아래가 따로 없다는 신돌석 장군의 뜻은 다른 이들을 통해 계속되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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