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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재연, 목숨을 바쳐 미국 함대에 맞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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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성보의 모습



미군은 부대를 둘로 나눠 수로와 육로를 따라 나란히 광성보로 향했어요. 광성보에 도착한 미국 함대는 먼저 함포 사격을 했어요. 광성보의 여러 성벽과 제일 높은 곳에 있는 손돌목 돈대도 함포 사격에 크게 파괴되었어요. 함포 사격이 끝나자 수로에서 광성보로 상륙한 부대와 육로를 따라 올라온 부대가 함께 가파른 언덕을 오르며 조선군을 공격하였어요.
조선군은 무너진 성벽 속에서 버티며 미군의 공격을 막아냈어요. 미군이 언덕에 거의 오를 때까지 조선군은 화승총을 계속 쏘아댔어요. 그리고 화승총을 쏠 수 없게 되자 무너진 성벽 위로 뛰어올라 아래쪽의 미국 병사를 향해 돌을 던졌어요. 미군이 성벽을 넘자 조선군은 칼과 창, 맨손으로 맞섰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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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성보 전투(강화역사박물관)



조선군에게 항복이란 없었어요. 그들은 죽을 때까지 싸웠으며, 마지막 병사가 죽었을 때 광성보 전투는 끝났어요. 어재연 장군을 비롯한 50여 명의 조선군은 이 전투에서 장렬한 최후를 맞이했어요. 미국의 침략에 맞서 강화도에서 벌어진 이 사건을 신미양요(1871년, 고종 8)라고 해요.
광성보를 점령한 미군은 관아를 불태운 후 초지진으로 돌아가 머물면서 조선 정부와 협상을 시도했어요. 그러나 미국 함대의 위협에도 불구하고 조선 정부는 협상에 응하지 않았어요. 조선과의 통상이 불가능할 것을 예상한 미국 함대는 방향을 돌려 물러났어요.

두 차례나 서양의 침략에 맞서 싸웠던 조선은 서양에 대한 경계심이 무척 높아졌어요. 또한 서양에 맞서 싸울 수 있다는 자신감도 커졌어요.

“서양 오랑캐가 침입하는데 싸우지 않으면 화친하는 것이요, 화친을 주장하는 것은 나라를 팔아먹는 것이다.”

흥선 대원군은 한성과 전국 각지에 척화비를 세워 서양과 교류하지 않겠다는 생각을 더욱 굳건히 하였어요. 그리고 군대를 정비하고 군사력을 키우기 위해 노력했지요. 그러나 서양의 발전된 무기에 놀라면서 조선이 부강해지려면 서양의 문물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사람도 늘어났어요.

서양 세력이 힘을 앞세워 개항을 요구하는 상황 속에서 조선은 어떤 결정을 해야 했을까요? 조선의 결정은 이후 어떤 결과를 가져왔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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