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대적인 학문을 배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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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사람이 모인 가운데 장례식이 치러진 이 사람은 바로 민족 지도자인 여운형이에요. 여운형은 1886년 경기도 양평에서 양반이었던 여씨 집안의 장남으로 태어났어요. 여운형의 어머니는 커다란 해를 품에 안는 꿈을 꾸고 그를 낳았다고 해요.
“앞으로 우리 손자를 몽양이라고 불러야겠다.”
여운형이 태어나자 그의 할아버지는 ‘태양을 꿈꾸다.’라는 뜻이 담긴 ‘몽양’이란 호를 지어주었어요.
여운형은 집안사람들의 사랑을 듬뿍 받으면서 자랐어요. 그의 어머니가 30살이 넘은 늦은 나이에 얻은 아들이었거든요. 어머니는 여운형이 태어나기 전 3명의 아이를 낳았는데 모두 어린 나이에 세상을 떠났어요. 그러니 집안사람들이 여운형을 얼마나 아꼈을지 짐작할 수 있겠죠.
15살이 된 여운형은 서울로 올라와 배재학당에 입학했어요. 배재학당은 미국인 선교사가 근대적 학문을 가르치기 위해 세운 학교에요. 그런데 여운형은 배재학당을 1년쯤 다니다가 흥화학교로 전학을 갔어요. 배재학당을 다닌 기간은 짧았지만 이곳에서 배운 신학문은 여운형의 삶을 크게 변화시켰어요. 무엇보다도 모든 사람이 평등하다는 근대적인 생각을 하게 되었지요. 그러던 중 아버지가 돌아가셨어요. 아버지의 3년 상을 끝낸 후 여운형은 집안의 노비 10여 명을 한자리에 불러 모았어요.
“이 노비문서는 불태울 것입니다. 앞으로 여러분은 자유로운 신분이니 자기에게 알맞은 직업을 택해서 살아가도록 하세요.”
“아니, 갑자기 무슨 일이신가요?”
“여러분과 저는 날 때부터 평등한 사람들입니다.”
여운형은 노비문서를 불태우고 집안의 노비를 자유로운 신분으로 풀어주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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