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운형

을사늑약 후 일본에 반대하는 운동에 나서다

본문

“그 소식 들었나? 민영환 대감이 자결했다는군.”


“을사늑약 체결 소식에 분을 이기지 못했다는군.”

“나라를 아끼던 훌륭한 분이셨는데… 안타까운 일이네.”


1905년 일제는 강제로 을사늑약을 맺어 대한 제국의 외교권을 빼앗아 갔어요. 당시 여운형의 나이는 20살이었어요. 여운형은 이때부터 일본에 반대하는 운동에 나섰어요. 가장 먼저 한 것은 이곳저곳을 다니면서 사람들에게 민영환의 유서 내용을 알리는 것이었어요. 그의 연설은 친일적인 사람조차 눈물을 흘리게 할 정도로 감동적이었다고 해요.


이후 1907년부터 일본에 진 빚을 갚자는 국채보상운동이 한창 진행되기 시작했어요. 여운형은 경기도 양평에 국채보상운동 지회를 세우고 활동하면서 사람들을 모아 놓고 연설을 했어요.


“여러분! 일제에 진 빚을 갚아야 합니다. 그러려면 담배를 끊고 그 돈으로 모금을 하여야 합니다. 담배는 나라를 되찾은 후 다시 피울 수 있으나 빼앗긴 나라를 찾는 기회는 쉽게 오지 않습니다.”


그의 연설을 들은 사람들은 마음이 움직여 국채보상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다고 해요. 국채보상운동은 여운형과 같은 여러 사람들의 노력으로 활발하게 전개되었지만, 일제의 집요한 방해로 좌절되고 말았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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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채보상운동을 이끈 여운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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