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희순

의병장으로 활약하다

본문

1895년 유홍석이 춘천 유림과 함께 의병을 일으켰을 때, 윤희순도 나라를 위해 일어나야 한다는 뜻을 밝히며 의병을 돕겠다고 나섰어요. 하지만 시아버지 유홍석은 말렸어요. 제사도 지내야 하고, 자손도 잘 키워야 한다고 말이죠. 남녀의 구별이 엄격한 시절이라 그녀도 그 말을 들을 수밖에 없었어요.


그러나 나라는 점점 위태로워져만 갔어요. 러일 전쟁에서 이긴 일본은 우리나라의 외교권을 빼앗더니 곧 광무황제를 강제로 물러나게 하고, 나라의 군대마저 해산시켰어요. 일본군과 의병들의 군사력 차이는 너무나도 컸어요. 의병들은 일본군에 쫓겨 중국 만주 지역까지 갔다가, 무기만 빼앗긴 채 돌아와야만 했어요.


윤희순은 이를 가만히 두고만 볼 수 없었어요. 십여 년 전 의병을 일으킬 때처럼 마을을 돌아다니며 부녀자들도 의병 활동에 참여할 것을 호소하였어요.


“아무리 여자인들 나라 사랑 모를쏘냐?”


“너도 나가고 나도 나가자. 나라 없이 살 수 있나.”

윤희순은 나라를 구하는 데에는 남녀의 구별이 있을 수 없다고 하며 〈안사람 의병가〉를 지어 여자들이 함께 부르게 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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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사람 의병가〉를 부르는 윤희순




〈안사람 의병가〉


아무리 왜놈들이 강성한들 우리도 뭉치면 왜놈 잡기 쉬울 새라. 아무리 여자인들 나라 사랑 모를소냐. 아무리 남녀가 유별한들 나라없이 소용있나. 우리도 나가 의병하러 나가 보세. 의병대를 도와주세 금수에게 붙잡히면 왜놈 시중 받들소냐. 우리 의병 도와주세 우리나라 성공하면 우리나라 만세로다. 우리 안사람 만만세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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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희순의 안사람 의병가




윤희순의 외침은 곧 노랫가락에 실려 마을 안팎으로 퍼져 나갔어요. 순식간에 의병 600여 명이 모였어요. 의암댁, 턱골댁, 벌골댁, 용문댁, 소리댁 등 마을 아낙으로만 이루어진 ‘안사람 의병대’가 조직되었어요. 마을 골짜기 여우내골에 의병 훈련장도 만들었어요. 안사람 의병대원들은 남자들과 마찬가지로 군사 훈련을 받았어요.


그러나 의병대들에게는 제대로 된 무기가 없었어요. 그래서 안사람 의병대는 쇠붙이를 모아 화승총(불을 붙게 하는 노끈으로 화약에 불을 붙여 발사하는 구식 소총)을 만들기도 하였어요. 여성들이 앞장서서 식량과 무기를 만들어 오자 의병대의 사기도 높아져만 갔어요.


일본은 의병들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며 토벌대를 보냈어요. 워낙 무기가 우세하기 때문에 일본군이 의병들과의 싸움에서 지는 경우는 드물었지요. 일본은 이번에도 춘천 의병대들을 쉽사리 이길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일본군들이 고갯마루를 내려오자 의병들은 일본군을 둘러싸면서 포위망을 좁혀 나갔어요. 첫 사격 소리가 울리자 천지가 진동하듯 화승포가 불을 뿜기 시작했어요. 무기의 우세함을 믿고 있던 일본군들은 놀라 주춤거렸어요. 의병들의 수에 놀라고, 또한 무기에 다시 놀랐어요. 이전과 확실히 달라진 의병들의 위세에 당황한 일본군은 달아나기 시작했어요.


“한 놈도 남기지 말고 모조리 해치우자.”

“달아나는 놈들 꽁무니에 화승총을!”


춘천 의병대는 다른 지역에서 일어난 의병들과도 연합하여 활약하였어요. 다른 지역에서 의병들의 승리 소식도 들려 왔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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