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희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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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주로 넘어가 독립운동을 이어 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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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열한 의병 활동에도 불구하고 1910년 우리나라가 일본에 의해 강제로 병합되었어요. 이에 유홍석은 목숨을 끊으려고 하였어요. 그러자 윤희순은 지금 죽으면 일본만 좋은 일이지 뺏긴 나라를 어찌 되찾을 수 있느냐고 물었어요. 그래서 시아버지 유홍석과 남편 유제원은 해외에서 독립운동을 위해 중국 만주 땅으로 먼저 건너가고 윤희순은 집의 살림을 정리하고 곧 뒤따라갔지요.


만주 땅에서 유홍석은 유제원과 함께 의병을 모으고 조직하였어요. 그러는 동안 윤희순은 여성들을 모아 황무지를 개간하여 식량을 마련하는 등 생계 유지에 힘을 쏟았어요. 일제의 감시 속에 낮에는 농사를 짓고 밤에는 군사 훈련도 하였어요.


만주에서 윤희순의 삶은 너무나 힘들었어요. 하지만 윤희순은 굴하지 않고 독립운동을 하는 가족을 뒷바라지하며 자신도 끈질기게 독립운동을 이어나갔어요.

이웃 마을의 조선인과 중국인들에게 일본 제국주의의 침략을 일깨워 주고자 하였고, 군자금을 모집해 항일 운동 단체에 전달하였어요. 그러다 보니 항일 운동을 함께 했던 중국인들 중에는 윤희순의 영향을 받은 사람이 적지 않았어요.


한편 윤희순은 독립지사의 여성들과 함께 학교를 세우고 독립운동가를 양성하는 데 힘썼어요. 학생들에게 목숨 바쳐 항일 운동에 앞장서 국권을 회복해야 한다고 가르쳤으며 인근 마을 사람들에게 항일 애국 노래를 가르쳐주어 힘과 용기를 불어넣었지요.


그러는 와중에 시아버지 유홍석이 숨을 거두고, 얼마 지나지 않아 남편 유제원마저 세상을 떠나고 말았어요. 먼 이국 땅에서 홀로 남게 된 윤희순은 외롭고 힘들었어요. 하지만, 시련을 극복하며 자식들을 독립운동가로 키우기 위해 온 힘을 기울였어요.


윤희순의 아들 유돈상은 ‘조선독립단’을 조직하여 항일 운동을 펼쳐 나갔어요. 3‧1 운동이 일어나자 유돈상은 사람들과 함께 독립 만세 시위를 전개하였어요. 그러나 국내 잠입을 시도하다 일본군의 습격을 받아 많은 사람이 희생당했어요.


“실망하지 마라. 이럴 때일수록 독립지사들을 더 길러내야 한다.”

윤희순은 실의에 빠진 아들에게 용기를 불어넣어 주었어요. 이후 유돈상은 다시 힘을 내 조선독립단 학교를 세우고 국권 회복과 항일 투쟁에 앞장설 독립운동가를 길러 냈어요. 윤희순도 조선독립단에 가입해 독립운동을 하는 아들을 열심히 뒷바라지하였어요. 윤희순의 아들, 며느리, 조카까지 가족 모두가 독립 무장 투쟁에 앞장섰기 때문에 당시 주변 사람들은 그들을 ‘가족 군대’라고 불렀어요.


1935년 윤희순의 아들 유돈상마저 독립운동을 하던 중 일제에 붙잡혀 고문 끝에 세상을 떠났어요. 슬프게도 아들이 죽은 지 10여 일 후, 3대에 걸쳐 의병 활동의 뒷바라지를 하며 살았던 윤희순도 그녀의 파란만장한 일생을 끝맺었어요. 그때 그녀의 나이 일흔여섯이었어요.


나라를 구하는 데에 남녀의 구별이 있을 수 없다고 하며 나선 윤희순의 의병 활동과 독립운동은 지금 우리들에게 큰 울림이 되고 있어요. 윤희순은 나라를 구하는 길에는 여러 가지 방법이 있다는 것을 알려 주었어요.


윤희순의 이야기를 공부하며 여러분은 무엇을 알게 되었나요? 옳은 무언가를 실행하고자 할 때 여러분도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을 생각해보면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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