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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성룡, 임진왜란을 기록하다
나랏일을 맡아 훗날의 위험을 준비하다
임진왜란으로 큰 어려움을 겪어내다
지난 잘못을 반성하며 『징비록』을 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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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성룡, 임진왜란을 기록하다
옥연정사(경북 안동시)“아이고 이런, 나라의 큰 어른이 돌아가시다니!”“이 어른이 계셔서 그래도 이리 살 길이 열렸는데.”“당시 상황을 아프지만 기록으로 남긴 그 분의 뜻을 생각해보면 좋겠네.”나라에서 존경받는 어른이 돌아가셨어요. 전쟁으로 나라의 어려움이 닥쳐 엄청난 고통을 겪는 많은 사람들에게 이 분의 활약은 큰 인상을 남겼어요.게다가 다시는 전쟁이 되풀이되지 않길 바라며 소중한 기록을 남겼어요. 과연 이 사람은 누구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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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5
08-29
3
나랏일을 맡아 훗날의 위험을 준비하다
이 사람이 바로 임진왜란 때 활약한 유성룡이에요. 유성룡의 어머니는 천둥 번개 속에서 구름이 커다란 용으로 바뀌어 하늘로 올라가는 꿈을 꾸었어요. 아버지 유중영은 이 태몽을 들으며 말했어요.“구름이 용으로 변한 꿈을 꾸고 태어났으니 아이 이름을 성룡이라고 지어야겠소.”유성룡은 어려서부터 글 읽기를 무척 좋아했어요. 또 글을 읽다 궁금한 것이 생기면 몇 번이고 다시 읽었어요.유성룡은 21세에 당시 나라의 큰 스승인 퇴계 이황을 찾아뵙고 공부를 이어갔어요. 이황 선생은 바른 자세로 열심히 노력하며 학문에 힘쓰는 유성룡을 보면서 흐뭇해하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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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1
08-29
2
임진왜란으로 큰 어려움을 겪어내다
1592년 4월 부산 앞바다로 일본군들이 쳐들어왔어요. 임진왜란이 일어난 것이에요. 일본군은 부산을 함락하고 한양을 향해 물밀 듯이 쳐들어왔어요. 준비가 덜 된 조선은 큰 혼란에 빠졌어요. 굳게 믿었던 신립 장군 마저 충주에서 일본군에 패하자 조정에서는 난리가 났어요.국왕 선조는 한양에서 평양으로 피난을 떠나기로 했어요. 일본군들은 파도처럼 밀려들어와 어느새 한양까지 왔어요. 이 때 유성룡은 영의정으로서 군사의 총책임자 역할까지 맡아야 했어요. 유성룡은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병사들이 전투를 할 수 있도록 준비를 했어요. 그리고 전쟁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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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9
08-29
1
지난 잘못을 반성하며 『징비록』을 쓰다
유성룡은 고향에서 ‘지난 잘못을 반성하여 뒷날의 어려움에 대비한다’는 옛 말을 새기며 임진왜란 당시의 기록을 담은 『징비록』을 써내려갔어요.“이제 상황이 조금 안정이 되어 지난날을 떠올리니 너무나 황송하고 죄스럽기만 하다. 내가 임진년(1592년)부터 무술년(1598년)에 이르기까지 대략 정리하였으니 이것으로 나라에 충성하는 뜻을 표하고 또 어리석은 신하로서 나라에 보답 하지 못한 죄를 드러내고자 한다.”사실 유성룡은 부끄럽고 창피한 임진왜란의 기록을 정리하면서 여러 번 눈물을 흘렸어요. 전쟁으로 죄 없는 백성들이 목숨을 잃고 어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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