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훈민정음 게시판 내 결과

장영실 게시판 내 결과

  • 궁에 들어간 장영실은 상의원에서 일하게 되었어요. 상의원은 왕의 옷을 관리하던 기관이었지요. 손재주가 남달랐던 영실은 그곳에서도 눈에 띄었지요. 훗날 그의 뛰어난 재주에 대한 소식은 세종대왕 귀에까지 들어갔어요.“백성들이 편안하게 농사를 지을 수 있도록 하려면 하늘을 잘 읽어야 하는 법이다. 백성들의 생활에 도움을 주는 기구들을 만들어야 하느니라.”조선은 왕의 큰 임무 중 하나가 하늘을 잘 살피는 것이었지요. 농경 사회에서는 씨 뿌리고 수확하는 시기와 날씨의 변화를 아는 것이 중요했으니까요. 성문을 열고 닫으려면 정확한 시간을 알아…

정조 게시판 내 결과

  • 나라가 발전시키기 위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총명한 인재를 뽑는 일이었어요. 정조는 어떻게 하면 훌륭한 인재를 찾아내어 나라 운영에 도움이 되게 할까 고민하였어요.“그래! 예전 세종대왕이 궁궐 안에 집현전을 만들어 학자들을 키워내셨지. 집현전에서 공부한 학자들이 다양한 책도 펴내고 백성들을 위해 훈민정음도 만들었어.”정조는 새로운 기구를 만들어 학문을 발전시키고 자신을 힘것 도와줄 신하들을 육성하고자 하였어요. 정조는 창덕궁 후원에 커다란 건물을 지었어요. 1층이 ‘규장각’이고, 2층 누각이 주합루에요. 본래 규장각은 왕실도서관…

조선의 과학기구 게시판 내 결과

  • “나라는 백성을 근본으로 삼고, 백성은 먹을 것을 하늘로 삼는다. 농사는 생계의 근원이므로 임금의 일에서 제일 우선해야 한다.”세종은 늘 농사를 중요시 했어요. 세종이 하늘을 관측하고, 정확한 달력과 시계를 만들고자 했던 이유도 농사와 관련이 많아요. 농사에서는 비의 양을 측정하는 일도 매우 중요했어요. 비의 양에 따라 한 해 농사의 수확량이 정해지기 때문이지요. 가뭄이 들거나 홍수가 나면 곡식 생산량이 줄어들어 백성들은 큰 어려움을 겪었야만 했어요.조선에 가뭄이 계속되던 어느 날이었어요. 세종의 맏아들 이향(문종)이 땅을 파며 골…

  • 세종대왕역사문화관(경기 여주시)“전하! 드디어 간의가 완성되었습니다.”“고생이 많았다. 이제부터 정확한 천체의 움직임을 측정할 수 있게 된 것인가?”“그렇습니다. 이제 우리에게 맞는 정확한 달력을 만들 수 있을 것입니다.”세종은 이천, 장영실과 함께 중국의 간의를 연구해 우리 것으로 만들고는 무척 기뻤어요. 드디어 조선 하늘에 떠 있는 해, 달, 별의 위치를 정확하게 측정할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죠. 그런데 간의로 천체를 관측하는 것이 왜 중요했을까요? 세종은 과학기구를 개발하며 어떤 조선을 만들고 싶었을까요?

세종대왕 게시판 내 결과

  • 왕이 된지 26년이 되던 해인 1443년에 세종은 오랜 연구와 실험을 거쳐 드디어 조선의 글자를 만들었어요. 세종은 ‘백성을 가르치는 바른 소리’란 뜻으로 그 글자의 이름을 ‘훈민정음’이라고 불렀지요.“백성들이 일상생활에서 사용하는 말과 어우러지는 글자가 없고, 중국의 한자는 어려워 백성들이 자신의 뜻을 정확히 표현하지 못하고 있다. 이를 안타깝게 여겨 새로이 스물여덟 글자를 만들었다.”훈민정음 해례본국사편찬위원회훈민정음을 백성들에게 보급하려 하자 우려했던 대로 조정 신료들의 반발이 빗발쳤어요. 그 중 집현전 부제학 최만리라는 사람…

  • 집현전(서울 종로구)“전하! 어찌 새로운 글자를 만들어 오랑캐가 되려 하십니까?”“오랑캐라니요? 백성들의 어려움을 살피는 것은 국왕이 할 일! 내 앞 길을 막지 마세요!”많은 신하들의 거센 반대에도 불구하고 새로운 글자를 만든 이 사람은 누구일까요? 그는 왜 새로운 글자를 만들었을까요?태조 이성계가 정도전을 비롯한 신진사대부들과 함께 조선을 건국하였어요. 그런데 새로운 나라를 건설하는 과정에서 갈등이 일어났어요. 조선 건국에 공이 많았던 이방원은 공신 명단에 오르지 못했어요. 게다가 막내였던 이복 동생(방석)이 세자가 된 것에 이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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