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속 작은 이야기: 비의 양을 측정하라, 측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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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는 백성을 근본으로 삼고, 백성은 먹을 것을 하늘로 삼는다. 농사는 생계의 근원이므로 임금의 일에서 제일 우선해야 한다.”
세종은 늘 농사를 중요시 했어요. 세종이 하늘을 관측하고, 정확한 달력과 시계를 만들고자 했던 이유도 농사와 관련이 많아요. 농사에서는 비의 양을 측정하는 일도 매우 중요했어요. 비의 양에 따라 한 해 농사의 수확량이 정해지기 때문이지요. 가뭄이 들거나 홍수가 나면 곡식 생산량이 줄어들어 백성들은 큰 어려움을 겪었야만 했어요.
조선에 가뭄이 계속되던 어느 날이었어요. 세종의 맏아들 이향(문종)이 땅을 파며 골똘히 생각에 잠겨 있었어요. 비가 오고 나서 땅이 젖은 정도를 알아보고 싶었지만 좋은 방법이 떠오르지 않았어요.
“아바마마! 일정한 크기의 그릇과 자만 있으면 비의 양을 잴 수 있습니다.”
“비의 양을 잰다? 비의 양을 재서 무엇을 한단 말이냐?”
“비의 양을 잴 수 있으면 일 년 중 언제 비가 많이 오는지, 어느 지역에 비가 많이 오는지를 알아 미리 대비할 수 있을 것이옵니다.”
“세자의 말이 참말로 옳다.”
세종은 장영실을 불러 세자를 돕게 하였어요. 여러 번의 도전 끝에 ‘빗물을 재는 그릇’이란 뜻의 측우기가 만들어졌어요.
측우기를 만들 때 제일 어려운 일은 그릇의 크기를 정하는 것이에요. 그릇의 입구가 너무 크면 적은 양의 비가 왔을 때 그 양을 측정할 수가 없고, 입구가 너무 좁으면 바람이 불 때 비가 그릇 안으로 덜 들어와 정확한 강우량을 측정할 수 없었어요. 여러 번의 실험 끝에 측우기의 입구 크기는 14cm로 만들어졌어요. 이것은 지금의 세계표준규격과 유사한 크기인데, 지금 사용해도 될 만큼 매우 과학적으로 만들어진 것이에요.
받침대는 빗물이 땅에 부딪쳐 다시 측우기 안으로 들어가는 것을 막기 위해 높게 만들었어요. 그리고 주척이라는 눈금자로 측우기에 모인 비의 양을 쟀어요. 주척은 2mm 정도의 적은 빗물의 양도 측정할 수 있게 정밀하게 만들었어요.
측우기가 완성되자 세종은 명을 내려 전국 관아에 이를 설치하였어요. 그리고 지방 수령들에게 비가 온 날과 시각, 비의 양을 측정하여 보고하게 하였죠. 수령들이 보고한 자료를 모아 전국의 연중 강우량 자료를 만들었어요. 이러한 자료 덕분에 이전보다 더 체계적으로 농사를 지을 수 있게 되었어요.
세종과 여러 학자들은 조선의 천문, 기상, 기후 등 여러 분야를 연구하였어요. 그리고 다양한 과학 기구를 만들어 백성들의 삶을 풍성하게 만들고자 했어요. 세종과 학자들이 백성을 아끼고 사랑하는 마음으로 훈민정음을 만들었듯이, 여러 과학 기구 속에도 백성을 생각하는 마음이 가득 담겨 있어요.
현재를 살고 있는 우리는 더욱 발전된 과학 원리와 도구를 이용할 수 있게 되었어요. 그 속에서 모든 사람의 삶을 더욱 풍요롭게 만들어 줄 수 있는 것은 무엇인지 찾아보아요.

과학적 원리를 탐구한 측우기

측우기로 강우량을 재는 세종과 세자(세종대왕역사문화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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