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해주 연추의 책임자로 인정받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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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이 흘러 러시아 선장은 나이가 들고 더는 무역선을 운항할 수 없게 되었어요. 그래서 블라디보스토크에 있는 친구 회사에 최재형을 소개했지요. 최재형은 그곳에 조그마한 상점을 열어 몇 년간 성실히 일하여 재산을 모았어요. 그 후 가족이 있는 연추로 돌아가 자신이 번 돈으로 땅을 사서 농사를 지었어요.
그 무렵 러시아는 블라디보스토크부터 조선 국경 가까이에 있는 크라스노예 마을까지 군사 도로를 건설하기 시작했어요. 도로의 일부 구간에서는 조선인들이 일하고 있었지요. 이때 러시아어를 잘하는 최재형이 통역사로 일하면서 어려움을 겪는 동포들을 도와주었어요.
그래서 한인 동포들은 그를 ‘최 표트르’ 대신 ‘최 페치카’라는 애칭으로 불렀어요. 1888년 도로가 성공적으로 건설된 후 최재형은 그 공을 인정받아 러시아 정부로부터 훈장을 받기도 했어요.
1892년 러시아 정부는 연해주 일대에 정착한 조선인들에게 러시아 국적을 주기 시작했어요. 그리고 이들이 사는 몇 개의 마을을 묶어 연추읍으로 만들고 지역 행정을 책임지는 ‘도헌’을 두었어요. 최재형은 1893년 연추 지역 도헌이 되었어요.
최재형은 연추 지역의 한인 마을마다 학교를 짓는 일에 앞장서서 아이들이 공부할 수 있도록 했어요. 가난한 학생이 마음 놓고 공부할 수 있도록 장학금도 내놓았지요. 한편, 최재형은 1904년 러일 전쟁 때 러시아에 군수 물품을 판매하면서 큰 부자가 될 수 있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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