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재형

두 개의 임시정부에서 주요 직책에 임명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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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4년 권업회가 러시아에 의해 해산되었지만, 독립운동가들은 다시금 독립운동을 위한 조직을 만들려고 했어요. 그 결과 1917년 ‘전로한족회중앙회’라는 조직이 만들어졌어요. 1919년 ‘전로한족회중앙회’는 ‘대한국민의회’로 확대 개편되었지요. ‘대한국민의회’는 우리나라 밖에서 만들어진 임시정부 중 하나에요. 최재형은 ‘대한국민의회’에서 외교부장으로 임명되었어요.


한편 1919년 3·1운동 후 중국 상하이에서 이시영, 이동녕, 신규식 등의 독립운동가가 모여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수립했어요. 상하이 임시정부에서 최재형은 초대 재무총장으로 뽑혔지요. 그러나 최재형은 상하이에 가지 않았어요. 자신의 근거지가 있는 연해주에서 활동하고 싶었던 것 같아요.


1920년 일본은 러시아 연해주 일대에 군대를 보냈어요. 얼마 전 러시아와 한인 유격대가 일본군을 공격하여 큰 피해를 보았다는 이유 때문이었어요. 일본은 연해주 일대에 있는 일본인을 보호한다는 명분을 내세워 블라디보스토크의 신한촌을 비롯하여 여러 한인 마을을 공격했어요.

당시 최재형은 우수리스크에 살고 있었는데, 그곳도 일본군의 공격을 피하지 못했어요. 일본군이 올 것을 예상한 가족들이 그에게 도망가라고 했지만, 그는 거절했어요. 자신이 도망가면 가족들에게 큰 피해가 가리라 생각했기 때문이에요.


결국 최재형은 1920년 4월 5일 새벽에 집에서 체포되었어요. 그리고 일본군에게 끌려가 죽임을 당했지요. 이후 그의 가족은 일본에 시신이라도 돌려달라고 요청했지만, 일본은 이런저런 핑계를 대고 돌려주지 않았어요.


최재형의 순국 후 그의 가족은 어떻게 되었을까요? 그의 가족을 비롯하여 연해주 일대의 한인들은 1937년 소련 정부에 의해 중앙아시아에 강제로 옮겨져서 살아야 했어요. 1991년 소련이 해체된 후 지금은 우즈베키스탄, 카자흐스탄, 키르기스스탄 등의 나라가 들어선 지역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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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재형

독립기념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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