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복 후 북한에서 활동하다
본문
“아버지, 제가 평양으로 돌아가던 중 면사무소 앞에서 라디오 방송을 들었는데 일제가 항복했대요.”
1945년 8월 15일 조만식은 자신의 고향에서 광복이 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어요. 광복 후 서울에서는 여운형이 중심이 되어 조선건국준비위원회가 만들어져 사회 질서를 바로잡고 새로운 나라를 만들 준비를 했어요.
평양에서도 여러 민족운동가가 조만식을 위원장으로 추대하고 ‘조선건국준비평남위원회’를 만들었어요. 보통은 줄여서 ‘평남 건준’이라 불러요. 조만식은 평남 건준 위원장 자격으로 광복 후 우리 민족이 새로운 사회를 만들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자기 생각을 밝혔어요.
“전쟁에서 진 일본인에게 해를 입히는 일은 하지 맙시다. 또 조선 동포끼리 사사로운 복수를 하지 말고, 서로 뜻을 모아 새로운 사회를 만드는 데 힘써야 합니다.”

머리에 붕대를 감고 있는 조만식의 마지막 모습
고당조만식선생기념사업회
조만식이 바라는 것은 모든 사람이 함께 힘을 합쳐 새로운 나라를 만드는 것이었어요. 덕분에 평양 사람들은 별다른 충돌 없이 평화롭게 광복을 맞이했어요. 그런데 조만식의 활동은 쉽지 않았어요. 8월 26일 소련군이 평양에 왔거든요. 소련은 38선 북쪽 땅에 자신들의 공산주의 체제를 지지하는 국가를 만들려 했어요. 조만식은 소련 군정이 하는 일이 우리나라를 분단시키는 것으로 생각하여 협조하지 않았어요.
결국 1946년 1월 조만식은 소련군과 김일성 일파에 의해 평양 호텔에 갇혀 지내게 되었어요. 조만식을 아꼈던 여러 민족 지도자 중에는 그에게 남쪽으로 갈 것을 권하는 사람들도 있었어요. 하지만 조만식은 북한에 사는 동포들과 함께하겠다며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어요.
1950년 6·25 전쟁이 한창 벌어지고 있던 때에 북한에서 죽음을 맞이했어요. 조만식이 북한에 남아 북한 동포와 함께 하겠다고 했을 때 어떤 마음이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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