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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만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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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만식
조만식, 우리 민족을 하나로 묶기 위해 노력하다
장사하는 아버지를 보고 자라다
늦은 나이에 학교에 가다
일제에 맞서 실력을 키우기 위한 운동을 펼치다
일제와 타협하지 않다
광복 후 북한에서 활동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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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만식, 우리 민족을 하나로 묶기 위해 노력하다
오두산 통일전망대(경기 파주시)“일본에 공부하러 온 유학생 여러분, 고향이 어딘지 묻지 맙시다.”“고당의 의견이 옳습니다. 전라도, 경기도 등 출신 지역을 따지지 말고 유학생들의 친목회를 만듭시다”1911년 일본의 수도인 도쿄에서 조선유학생친목회가 만들어졌어요. 자기의 출신 지역별로 나뉘어 있던 유학생들의 모임을 하나로 묶은 것이죠. 이 모임을 만드는 데 큰 역할을 한 고당 조만식 선생은 어떤 사람일까요? 그는 왜 이런 일을 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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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6
09-01
5
장사하는 아버지를 보고 자라다
조만식은 1883년 평안남도의 강서군 반석면에서 태어났어요. 그의 집안은 원래 양반이었어요. 큰 부자는 아니지만 매년 상당히 많은 쌀을 거둬들일 정도의 땅을 가지고 있었어요. 그러나 그의 아버지는 다른 지역에 사는 양반들처럼 글을 읽고 과거시험을 준비하지 않았어요. 장사하는 사람들을 집에서 머물게 해 서로 이어주거나 물건을 대신 팔아주는 일을 했어요. 또 장사하는 사람들의 물건을 보관해주거나 운반하는 일도 했어요. 상인이 되었던 것이죠.그런데 조만식의 아버지는 양반이면서 왜 상인이 되었을까요? 평안도 지방에 살았기 때문이에요. 조선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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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
09-01
4
늦은 나이에 학교에 가다
“이제부터 나도 신학문을 배워야겠다.”기독교를 믿으면서 조만식은 새로운 생활을 시작했어요. 조만식은 1905년 23살의 늦은 나이였지만 학교에서 공부하기로 결심했어요. 그가 다닌 학교는 미국 선교사가 세운, 평양에 있던 숭실학교였어요. 요즘의 중학교와 달리 5년 동안 공부를 하던 곳이었어요.평양에 세워진 숭실학교숭실대학교다른 사람들보다 늦은 나이에 공부를 시작했던 조만식은 열심히 노력하여 3년 만에 학교 공부를 마칠 수 있었어요.“졸업을 축하합니다. 이제 교사가 되어 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쳐 보는 것은 어떨까요?”“저는 일본에 가서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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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6
09-01
3
일제에 맞서 실력을 키우기 위한 운동을 펼치다
1913년 조만식은 공부를 마치고 다시 우리나라로 돌아왔어요. 그리고 곧바로 오산학교에 가서 아이들을 가르쳤어요. 조만식은 오산학교에서 헌신적으로 일했어요. 처음에는 월급도 받지 않았어요. 또 학생을 가르치는 일뿐만 아니라 기숙사에서 학생들과 함께 생활했어요.1919년 일제에 우리의 독립 의지를 보여 준 3·1 운동이 일어났어요. 조만식은 1915년 오산학교의 교장이 되었다가 이 무렵 교장에서 물러나 평양에서 3·1 운동에 적극 참여해 수배되었어요. 그후 중국에서 독립운동을 하려고 떠나다가 체포되었어요.조만식은 감옥에서 풀려난 후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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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8
09-01
2
일제와 타협하지 않다
1920년대 우리 민족의 독립운동에 큰 변화가 생겼어요. 1910년대 독립운동을 적극적으로 펼치던 사람 중에 일제에 협조하는 사람들이 하나둘씩 생겨나기 시작한 것이에요.왜 이런 일이 생겼을까요? 우리 민족이 펼친 3·1 운동을 지켜본 일제가 식민 통치 방법을 바꾸었기 때문이에요. 일제는 “우리의 문화를 존중하고 정치에서 자치권을 준다.”며 독립운동을 하던 사람 중 일부를 자신의 편으로 끌어들이려 했어요. 민족을 분열시키기 위해서였죠.실제로 1920년대에 일제와 타협하여 완전한 독립이 아니라 자치를 주장하는 사람들이 나타났어요. 이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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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5
09-01
1
광복 후 북한에서 활동하다
“아버지, 제가 평양으로 돌아가던 중 면사무소 앞에서 라디오 방송을 들었는데 일제가 항복했대요.”1945년 8월 15일 조만식은 자신의 고향에서 광복이 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어요. 광복 후 서울에서는 여운형이 중심이 되어 조선건국준비위원회가 만들어져 사회 질서를 바로잡고 새로운 나라를 만들 준비를 했어요.평양에서도 여러 민족운동가가 조만식을 위원장으로 추대하고 ‘조선건국준비평남위원회’를 만들었어요. 보통은 줄여서 ‘평남 건준’이라 불러요. 조만식은 평남 건준 위원장 자격으로 광복 후 우리 민족이 새로운 사회를 만들기 위해 어떻게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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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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