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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제국의 수립을 선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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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종이 러시아 공사관으로 피신한 것은 일본의 위협에서 벗어나려는 뜻에서 벌인 일이었어요. 하지만 국왕이 러시아 공사관으로 도피하자, 나랏일은 엉망이 되었어요. 고종은 서양의 여러 나라로부터 자신의 안전을 보장받는 대신 금광 채굴권, 철도 부설권 등 경제적 이익이 되는 여러 권리들을 넘겨주었어요. 이전에도 나라의 이권을 외국에 넘겨주는 경우가 있었으나 러시아 공사관에 고종이 머물던 시기에 더욱 심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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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말기 열강의 이권 침탈




러시아에 기대어 일본의 침략을 잠시나마 막았지만 서양 여러 나라의 경제적 이권 침탈로 나라는 더 큰 혼란에 빠졌어요. 정치적 혼란을 막고, 나라의 자주권을 회복하는 일이 시급한 과제였어요. 이때 독립협회가 중심이 되어 국왕이 빨리 러시아 공사관에서 나와 궁으로 돌아와야 한다고 주장했어요. 결국 고종은 1년 만에 러시아 공사관에서 나와 경운궁(덕수궁)으로 돌아왔어요.


경운궁에 돌아온 고종은 조선을 자주 독립국으로 다시 세우기 위한 준비에 착수했어요. 고종은 중국 사신을 접대하던 옛 남별궁 터에 환구단을 쌓고 황제 즉위식을 올림으로써 조선이 자주 독립국임을 널리 알렸어요. 나라 이름도 ‘대한제국’으로 바꿔 새로운 나라가 수립되었음을 세계를 향해 선포하였어요(18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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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운궁(덕수궁)과 환구단 모형(서울역사박물관)




태극 국기를 앞세우고 황룡포에 면류관을 쓴 황제와 그를 따르는 황태자, 관료, 군인들의 행렬을 보면서 집집마다 태극기를 높이 걸고 색등불을 환하게 달아 놓은 거리의 표정은 오랜만에 새 시대의 시작을 경축하는 밝은 분위기였다.


-『독립신문』, 1897년 10월 14일자, 논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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