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속 작은 이야기 : 대한제국과 독립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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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종이 러시아 공사관에 피신해 나라의 주권이 흔들리고 있을 때, 미국에서 돌아온 서재필이 중심이 되어 독립협회를 만들었어요. 독립협회는 조선이 자주 독립국임을 널리 알리고자 중국 사신을 맞이하던 헐린 영은문 앞에 독립문을 세우고자 했어요. 고종도 독립협회의 활동을 적극 지원하였어요.
경운궁(덕수궁)으로 돌아온 고종은 강력한 왕권을 토대로 정부와 군대를 이끌어 대한제국을 부강한 나라로 만들고자 했어요. 고종은 독립협회가 새로운 나라를 만드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 생각했어요. 하지만 독립협회의 뜻은 달랐어요. 국민이 선출한 대표로 의회를 만들어 나라를 이끌고자 했어요.
고종은 독립협회와 국민의 지지가 필요했어요. 그래서 독립협회의 건의에 따라 의회의 중간쯤 되는 정부 기구를 만드는 것에 동의했어요. 우리나라 역사상 최초로 국민 대표가 참여하는 의회가 만들어질 단계에 이르렀어요.
조선 왕조가 이미 쇠퇴했으므로, 많은 사람이 함께 독립협회 회장 윤치호를 대통령으로 선출하면…
의회 설립 하루 전날 밤, 누가 썼는지 알 수 없는 글이 광화문 여기저기에 붙었어요. 친러파 대신들이 독립협회와 개혁파 대신들을 모함하기 위해 붙인 벽보였어요. 친러파 대신들은 개혁파가 황제 중심의 전제 군주제를 의회 중심의 입헌 군주제로 개혁하려는 것이 아니라, 황제를 없애고 대통령 중심의 공화제로 바꾸려 한다고 고종에게 모함을 했어요.
황제 자리에서 내려와야 한다는 거짓 보고에 놀란 고종은 독립협회 간부들을 체포하고, 다시 친러파 대신을 중심으로 정부를 세웠어요. 그리고 벽보가 붙은 지 두 달이 되지 않아 군대를 동원해 독립협회를 강제로 해산시켰어요. 독립협회가 사라지면서 국민의 대표가 정치에 참여하는 의회 설립의 꿈도 사라졌어요.
독립협회가 없어지면서 고종은 소수의 친러파 대신들과 대한제국을 이끌었어요. 만약 왕과 국민이 나라를 함께 다스리는 입헌 군주제를 받아들였더라면 대한제국의 미래는 어떻게 되었을까요? 많은 국민의 지지 속에 대한제국이 부강해지면서 일본에게 나라의 주권을 빼앗기는 것을 막을 수 있었을까요?

서재필 동상과 독립문(서울 서대문구 서대문독립공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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