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까지 절개를 지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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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사람이 한용운을 우러러봤어요. 존경받는 종교인으로 뛰어난 연설가이자 문학가로, 다양한 활동을 하면서도 독립 운동의 한길을 걸었기 때문이에요. 하지만, 정작 한용운은 외로웠어요.

한용운이 살았던 심우장(서울 성북구)
함께했던 독립 운동가들이 하나둘 곁을 떠나가고 있었어요. 3·1 운동 이후 일제는 우리 민족의 강력한 저항을 무마시키기 위하여 민족 지도자들을 하나둘 회유하기 시작하였어요. 독립운동을 하던 사람 중에는 배신자들이 생겨났어요.
그 중엔 3·1 운동 때 독립 선언서를 만든 최남선도 있었어요. 그는 일제의 꾐에 넘어가 ‘중추원 참의’라는 높은 관직에 올랐어요. 이 소식을 전해 들은 한용운은 매우 분노했고, 슬퍼하였어요.
“이런 천하의 배신자들! 어찌 조국을 등 질 수 있단 말인가!”
그러던 어느 날, 한용운은 길가에서 우연히 최남선을 만났어요. 최남선은 한용운에게 반갑게 인사하려 하였어요.
“만해 선생, 정말 오랜만이오! 저 최남선입니다.”
“당신 누구시오? 내가 아는 최남선은 벌써 죽어서 장례를 치른 지 오래요.”
최남선뿐 아니라 최린도 마찬가지였어요. 한용운과 둘도 없는 오랜 친구이자 3·1 운동을 같이 한 동지였던 최린도 배신하여 높은 관직에다 일제의 앞잡이 신문인 매일신보의 사장이 되었지요.
함께했던 독립 운동가들이 하나둘 곁을 떠나가고 있었어요. 3·1 운동 이후 일제는 우리 민족의 강력한 저항을 무마시키기 위하여 민족 지도자들을 하나둘 회유하기 시작하였어요. 독립운동을 하던 사람 중에는 배신자들이 생겨났어요.
그 중엔 3·1 운동 때 독립 선언서를 만든 최남선도 있었어요. 그는 일제의 꾐에 넘어가 ‘중추원 참의’라는 높은 관직에 올랐어요. 이 소식을 전해 들은 한용운은 매우 분노했고, 슬퍼하였어요.
“이런 천하의 배신자들! 어찌 조국을 등 질 수 있단 말인가!”
그러던 어느 날, 한용운은 길가에서 우연히 최남선을 만났어요. 최남선은 한용운에게 반갑게 인사하려 하였어요.
“만해 선생, 정말 오랜만이오! 저 최남선입니다.”
“당신 누구시오? 내가 아는 최남선은 벌써 죽어서 장례를 치른 지 오래요.”
최남선뿐 아니라 최린도 마찬가지였어요. 한용운과 둘도 없는 오랜 친구이자 3·1 운동을 같이 한 동지였던 최린도 배신하여 높은 관직에다 일제의 앞잡이 신문인 매일신보의 사장이 되었지요.
그 소식을 들은 한용운은 새벽 일찍이 최린의 집을 찾아가 대문 앞에서 엎드려 통곡하였어요. 최린이 놀라 뛰쳐나와 물었어요.
“아니, 만해가 아니오? 도대체 무슨 일이오?”
“내 친구 최린이 죽었다고 하여 와서 조문하는 거요. 아직 죽을 때가 안 된 사람인데 참으로 안되었소.”
한용운은 그렇게 내뱉고는 휙 돌아섰지요. 그때부터 그는 최린을 죽은 사람으로 여기고 다시는 만나지 않았어요.
이처럼 한용운은 나라를 저버린 사람들과는 과감히 인연을 끊었어요. 일제는 물론 그들이 지원해 주는 돈도 절대 받지 않았지요. 그는 굶는 한이 있더라도, 옳지 못한 일과 돈 앞에서는 절대 고개 숙이지 않았어요. 한용운은 그야말로 불의와 타협할 줄 모르는 사람이었어요.
1937년 어느 날 한용운에게 슬픈 소식이 들려 왔어요. 애국지사였던 김동삼 선생이 서대문 형무소에서 돌아가신 것이었어요. 그런데 한용운을 더욱 슬퍼하게 한 것은 누구도 그의 시신을 수습하려 하지 않는다는 사실이었어요. 일제의 눈이 무서워서였지요.
한용운은 그 길로 달려가 그의 시신을 인수하고 심우장에 모시고와 슬퍼하며 장례를 치르었어요.
만해 한용운은 평생 조국을 뜨겁게 사랑했어요. 자기 뜻을 바로 세워 꿋꿋하게 의로운 길을 걸었지요. 하지만 안타깝게도 광복을 1년여 앞둔 어느 날, 그는 건강이 나빠져 세상을 떠나고 말았어요. 평생 일제와 타협하지 않은 한용운은 세상을 떠난 뒤에도 많은 사람의 존경과 사랑을 받았어요. 이런 한용운에 대해 벽초 홍명희는 이렇게 평가하였어요
“한용운 한 사람 아는 것이 다른 사람 1만 명 아는 것보다 낫다.”

한용운의 모습(국사편찬위원회)과 한용운 사당 만해사(충남 홍성)
만약 한용운이 스님으로서 절에서 불공만 드리고 독립운동에 나서지 않았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만약 한용운이 사람들을 만나 설득하며 3·1 운동을 이끌지 않았다면 우리나라 독립은 어떻게 되었을까요? 여러분이 만약 무서운 일제 강점기에 태어났다면 한용운처럼 끝까지 절개를 지키며 독립운동을 할 수 있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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