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용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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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 선언을 계획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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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9년 어느 날 한용운은 최린을 찾아갔어요. 최린은 일본 유학 시절 만난 친구였어요. 그는 손병희를 만난 인연으로 천도교에 들어가 보성전문학교의 교장이 되어 있었어요. 그들은 일본 유학 시절 독립에 대한 이야기를 자주 나누곤 하였지요.


“자네도 들었는가? 오는 2월 8일 일본에서 한국 유학생들이 조선 독립을 선언하겠다는군”


“우리도 가만히 있을 수 없다 싶어, 일단 천도교에서도 비밀리에 독립운동을 준비하고 있네.”


“그럼 잘 되었네. 서로 연합을 하는 게 어떤가? 독립을 위한 마음이야 다 똑같지 않은가.”


한용운은 독립의 기운이 서서히 일어나고 있다는 말에 온몸에 전율을 느꼈어요. 뜻이 통한 두 사람은 손을 꼭 잡았어요. 드디어 조국의 독립을 위해 큰일을 하겠다고 생각하니 한없이 기뻤어요.

한용운은 그날부터 독립 선언에 함께 할 뜻있는 민족 지도자들을 모으러 발 빠르게 움직였어요. 먼저 월남 이상재를 찾아갔어요.


“선생님, 지금 각계에서 조선 독립을 선언하려고 움직이고 있습니다. 함께 참여해 주신다면 더할 나위 없이 힘이 될 것입니다.”


“만해, 그러지 말고 차라리 조선 민족의 뜻을 총독부에 알리고 조선 독립을 청하는 게 어떻겠소?”


“아니, 내 나라의 독립을 선언하는 데 무슨 청원서를 내고 남의 눈치를 본답디까? 조선 독립은 우리 스스로 밀고 나가야 합니다.”


뜻밖에도 이상재는 거절의 의사를 밝혔어요. 한용운은 실망했어요. 민족 지도자의 생각이 너무 소극적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상재는 민중 계몽 운동에 앞장섰으며 조선 기독교 청년운동을 이끌어 가던 큰 인물이었어요. 한용운은 누구보다 민중을 이끄는 이상재의 힘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어요. 안타까운 일이었어요.


이어 찾아간 다른 민족 지도자들도 사람들이 다친다는 이유로 독립 선언 참여를 거부하였어요. 한용운은 또 크게 실망하였어요. 그다음 한용운은 천도교 교주인 손병희를 찾아갔어요. 한용운은 망설이는 손병희에게 진심으로 힘 있게 설득하였어요.

“선생님의 힘이 필요합니다. 독립 선언서에 서명을 해 주십시오.”


잠시 후 손병희는 한용운의 두 손을 덥석 잡으며 참가하겠다고 말하였어요. 한용운은 천만 군사를 얻은 듯 마음이 든든했어요.


이렇게 각계 지도자들을 찾아다니며 설득한 끝에 한용운은 마침내 독립 선언에 참가할 기독교․천도교․불교의 지도자들을 모았어요. 기독교를 대표해서는 이상재 대신 이승훈이 나서 주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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