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화

좌측 날개
우측 날개

무오사화가 일어나다

페이지 정보

프린트 링크복사 목록


본문

1498년, 연산군이 즉위한 지 4년째 되던 해의 일이었어요. 성종의 실록을 편찬하기 위한 실록청이 만들어졌지요. 실록청 책임자는 이극돈이란 사람이었지요. 어느 날 이극돈은 사초를 살펴보다 흠칫 놀랐어요. 혹시나 했는데, 사관 김일손이 사초에 자신의 비리를 상세히 쓴 것이었어요. 큰일 났다 싶었어요. 이대로라면 자신은 물론 가문까지 망신당할 게 뻔했어요. 고심 끝에 이극돈은 김일손을 은밀히 찾아갔어요.


“이보게. 한 번의 실수를 사초에 기록해놓으면 내 꼴이 어떻게 되겠나? 나의 일을 실록에서 빼주면 자네의 고마움을 잊지 않겠네.”


그러나 김일손은 강경하게 거절하였어요. 이극돈은 입이 바짝 탔어요. 이대로 있어서는 안 되겠다 싶었지요. 그는 김일손의 사초를 꼼꼼히 살폈어요. 혹시 뭐라도 꼬투리를 잡아낼 생각이었지요. 그러다 매우 범상치 않은 글귀가 눈에 들어왔어요. 그것은 바로 김일손의 스승 김종직이 쓴 「조의제문(弔義帝文)*」이었어요.




0c29f126050a3d337a464623a2ead719_1787950266_5122.png
* 조의제문 : 의제를 애도하는 글




“정축년 10월 어느 날 잠을 자다가 꿈에 초나라 왕 의제가 나타나 ‘나는 초나라 회왕인데, 항우에게 살해당해 물에 잠겼다.’라고 하였다. 이는 죽은 의제가 억울함을 알리려고 나의 꿈에 나타난 것이리라. 나는 의제의 넋을 달래기 위해 이 글을 지어 위로하노라.”


이극돈은 골똘히 생각했어요.


‘정축년이라면 바로 단종이 세조에게 살해당한 1457년이 아닌가? 김종직은 초의 회왕을 단종에, 항우를 세조에 비유해 단종을 죽인 인물이 세조임을 알리고 있구나. 김종직이 누군가? 성종이 훈구파(세조가 왕이 될 때 공을 세워 관직에 오른 사람들)를 견제하기 위해 기용한 사림파의 우두머리가 아닌가? 이 기회에 잘만하면 김일손 무리를 혼내줄 수 있겠어!’


이극돈은 기뻐하여 이 사실을 유자광과 의논했어요. 유자광은 김종직에 감정이 좋지 않던 사람이었지요. 그는 ‘조의제문’을 읽고는 무릎을 치며 쾌재를 불렀어요. 이어 훈구파를 모은 뒤 연산군에게 김종직과 김일손이 연산군의 할아버지인 세조 임금을 모욕하는 대역죄를 저질렀다고 고했어요.


“김종직이 ‘조의제문’을 빙자해 세조 임금을 비방하는 글을 썼다는 것은 대역죄입니다. 이것을 사초에 실은 김일손도 처벌해야 합니다.”

조의제문(弔義帝文)


연산군은 김일손을 잡아들여 고문했어요. 훈구파는 이참에 김종직의 제자들인 사림파를 조정에서 몰아내고자 사건을 더욱 키웠어요.


이 사건으로 김일손은 대역죄를 물어 가장 잔혹한 방법으로 사형이 내려졌고, 이미 죽은 김종직에게는 부관참시라는 벌이 내려졌지요. 부관참시는 시체를 무덤에서 꺼내 다시 죽이는 무서운 벌이예요. 그리고 김종직의 제자들이었던 정여창, 김굉필 등도 처형되거나 유배를 당했으며, 『성종실록』편찬에 관여했던 김종직의 제자와 친구들도 죄를 받았지요.

이 사건은 무오년(1498년)에 선비가 화를 당했다 하여 ‘무오사화’라고 해요. 무오년의 사화는 사초 때문에 일어났다 하여 선비 사(士) 대신 역사 사(史)를 써서 ‘사화(史禍)’라고도 합니다.




0c29f126050a3d337a464623a2ead719_1787950327_7516.png
지계서원(경북 청도군)

김종직의 제자 김일손을 기리며 제사 지내는 서원이에요.

문화재청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Total 5 / 1 page
검색 열기 닫기
게시물 검색

사화 목록

사화 목록

최근글


  • 글이 없습니다.

새댓글


  • 글이 없습니다.
알림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