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자사화가 일어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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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오사화 이후 사림 세력은 뚜렷이 약해졌어요. 그러자 국왕의 잘못된 점을 지적하던 사림들의 힘이 약해지자, 연산군은 모든 일을 독단적으로 처리하기 시작했어요. 심지어 나라 재정이 고갈되자 훈구대신들의 재산을 빼앗아 매꾸려 했답니다. 이러한 상황이 닥치자 훈구파 대신들의 불만은 점점 커져갔습니다. 이런 와중에 임사홍이란 인물이 연산군에게 은밀히 고하였어요.
“전하의 친어머니께서 왕비의 자리에서 쫓겨나신 것은 엄 귀인과 정 귀인, 두 후궁이 모함했기 때문입니다.”
성종은 연산군의 친어머니인 윤씨가 왕비에서 쫓겨난 일을 백년 동안 의논하지 말라는 유언을 했어요. 그래서 사람들은 연산군이 알게 될까 봐 쉬쉬하고 있었지요. 그런 비밀을 임사홍이 폭로한 것이었어요.
연산군은 비로소 자신의 친어머니 윤씨가 왕비 자리에서 쫓겨나 억울하게 죽임을 당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어요. 지금까지 연산군은 성종의 새 왕비인 정현 왕후를 친어머니로 알고 자랐거든요. 연산군은 피가 거꾸로 솟는 분노와 슬픔에 어찌할 바를 몰랐어요.

분노하는 연산군
연산군은 그길로 선왕의 후궁이었던 귀인 엄씨와 정씨가 살고 있는 궁으로 갔어요. 그리고 연산군은 다짜고짜 그들에게 몽둥이를 휘둘렀어요. 결국 두 여인은 참혹한 모습으로 죽고 말았지요. 연산군의 살기 어린 분노는 멈추지 않았어요. 그는 곧장 할머니 인수대비가 있는 대왕대비전으로 향했어요. 연산군의 눈은 붉게 충혈되어 있었지요. 그리고 원망에 가득 찬 목소리로 물었어요.
“대비마마, 어찌하여 우리 어머니를 죽였습니까?”
결국 올 것은 오고야 만다고 하지 않던가! 복수는 멈출 줄 모르고 계속되었어요. 이로부터 6년 뒤인 1504년 3월에는 연산군은 폐비 윤씨 사건에 얽힌 인물들을 모두 잡아들이라 명했어요. 그리고 거침없이 형벌을 내렸어요.
이세좌라는 인물의 경우에는 폐비에게 사약을 들고 갔다는 이유로 먼저 사형을 받았고, 이미 죽은 한명회, 정창손 등도 폐비의 일에 찬성했다는 죄목으로 부관참시의 중벌을 받았어요. 또 윤씨의 폐비 문제를 성종과 논의했던 윤필상, 김굉필 등도 죽임을 당했어요.
연산군은 폐비 윤씨의 일에 조금이라도 관련이 있는 사람은 훈구파든 사림파든 가리지 않고 죽였어요. 이 사건은 갑자년(1504년)에 일어난 사화라 하여 ‘갑자사화’라고 해요. 갑자사화는 희생자의 수와 규모, 그리고 형벌의 잔인함이 무오사화보다 훨씬 심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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