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 개항장 유적

조선 개항의 아픔을 간직한 인천항(제물포)

본문

조선은 운요호 사건을 계기로 1876년 일본과 강화도 조약을 맺고 개항을 했어요. 개항은 항구를 열고, 다른 나라와 무역을 하며 교류하는 것을 말해요. 나라 사이의 무역은 평등한 조건에서 이뤄져야 했지만 일본의 무력에 밀려 체결한 강화도 조약은 결코 평등하지 않았어요.


조선은 강화도 조약에 따라 제일 먼저 부산항을 일본에 열었어요. 일본은 부산 초량에 있는 옛 왜관(倭館) 터를 일본인들이 모여 살 수 있는 곳으로 만들었어요. 그리고 영사관, 경찰서, 재판소 등을 만들고, 조선의 법이 아닌 일본의 법으로 통치하였어요.


다른 나라에서 외국인이 자신의 나라 법에 따라 스스로 다스리는 지역을 조계지라고 불러요. 일본은 부산의 조계지를 중심으로 조선과 무역을 하였어요. 조선은 부산에 이어서 1880년에 원산, 1883년에 인천항(제물포)을 차례로 개항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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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화도 조약을 맺은 후 개항한 곳 : 부산항, 원산항, 인천항(제물포)





제물포는 개항 당시 수천 명이 사는 인천의 작은 어촌이었어요.게다가 제물포는 밀물과 썰물 때 바닷물 높이의 차가 크고 갯벌이 넓어 큰 배가 정박할 항구로서는 알맞지 않았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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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7년 월미도와 제물포의 모습

화도진도서관




조선이 개항하자 일본 뿐 아니라 서양의 여러 배들까지 개항한 항구로 몰려왔어요. 그 중에서 제물포는 한성에서 가장 가까운 항구여서 많은 배들로 넘쳐났지요. 하지만 갯벌 때문에 항구에 다가가지 못하자 배들은 가까운 월미도에 닻을 내렸어요. 그러면서 증기선에 필요한 석탄을 저장하는 시설이 월미도에 만들어졌지요.


제물포는 개항과 함께 서양 문물이 들어오는 가장 중요한 항구가 되었어요. 여러 나라의 외교 사절과 상인들도 제물포를 통해 조선으로 들어왔어요.

다른 나라의 외교관들은 먼저 제물포에 영사관을 만들었고, 조선과 무역을 하려는 상인이 영사관 주변에 모여살기 시작했어요. 이들이 모여 사는 곳에 조계지가 만들어지기 시작한 것이지요. 외국인과 새로운 문물이 들어오면서 제물포도 빠르게 변해갔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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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4년 제물포의 청과 일본 조계지 모습(George Rose, 대불호텔전시관)




제물포에 조계지를 제일 먼저 만든 나라는 일본이었어요. 일본이 조계지를 만들자 청도 바로 옆에 조계지를 만들었어요. 일본과 청은 이곳에 살던 조선인들을 몰아냈고, 심지어는 조선의 정치까지 간섭하였어요.


조선이 일본이나 서양의 여러 나라와 무역을 시작하자 공장에서 생산된 값싼 상품이 국내로 쏟아져 들어왔어요. 반면에 조선에서는 쌀과 같은 생활필수품과 금과 은 등 값비싼 상품이 대량으로 외국에 팔려 갔어요.

값싼 일본과 서양의 공산품으로 인해 소규모로 물건을 만들어 생활하던 조선의 수공업자들이 큰 어려움에 처했어요. 또 많은 곡물이 일본으로 빠져 나가면서 물가가 크게 올랐어요. 그러자 많은 백성들의 생활도 급격히 나빠졌어요. 외국과의 무역 때문에 농민과 수공업자를 중심으로 한 경제의 기초가 흔들리면서 조선의 국력도 점점 약해졌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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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원산과 함께 초기에 개항한 제물포(인천항)에는 세계와 교류하면서 근대적인 국가를 만들고자 한 조선의 뜻이 담겨 있어요. 반면에 일본을 비롯한 외국은 제물포를 조선의 이권을 빼앗기 위한 전초기지로 삼았어요.


임오군란 때 성난 조선의 백성에게 쫓긴 일본 관리도, 갑신정변 때 실패한 개화파가 일본으로 도망을 갈 때도 제물포를 이용했어요. 동학 농민 운동, 청일전쟁, 러일전쟁 때 일본군이 상륙한 곳도 제물포였어요. 일제는 우리나라의 국권을 빼앗기 위해 제물포를 적극적으로 이용한 것이지요.


지금도 인천항에 가면 개항기 일본과 청이 만들었던 조계지의 흔적이 남아 있어요. 자장면이 시작된 차이나타운이나 무역을 통해 조선의 많은 이권을 약탈하기 위해 세운 일본은행 건물, 일본인이 세운 우리나라 최초의 호텔 등이 지금도 남아 개항 당시 제물포의 모습을 볼 수 있어요.


개항과 함께 많은 조선 백성은 발전된 조선을 꿈꾸었어요. 당시 제물포에 들어오는 여러 나라 사람들과 외국 군대를 보며 조선 백성은 어떤 고민을 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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