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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에서 법칙을 찾은 조선의 과학기구
세종대왕역사문화관(경기 여주시)“전하! 드디어 간의가 완성되었습니다.”“고생이 많았다. 이제부터 정확한 천체의 움직임을 측정할 수 있게 된 것인가?”“그렇습니다. 이제 우리에게 맞는 정확한 달력을 만들 수 있을 것입니다.”세종은 이천, 장영실과 함께 중국의 간의를 연구해 우리 것으로 만들고는 무척 기뻤어요. 드디어 조선 하늘에 떠 있는 해, 달, 별의 위치를 정확하게 측정할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죠. 그런데 간의로 천체를 관측하는 것이 왜 중요했을까요? 세종은 과학기구를 개발하며 어떤 조선을 만들고 싶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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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7
08-28
6
중국의 달력을 이용한 조선
“이달 초하룻날 사시(9시~11시)에 일식을 할 것입니다.”천문관이 태종에게 일식이 있을 것이라고 보고했어요. 태종은 흰옷을 입고 신하들과 함께 월대에서 하늘의 변화를 기다렸지요. 그러나 오시(11시~13시)까지 오랫동안 기다렸지만 일식은 일어나지 않았어요. 결국 일식 시간을 맞추지 못한 천문관은 옥에 갇혀 처벌을 받았지요.조선 시대 천문을 잘못 예보한 천문관은 심한 경우 곤장을 맞기도 했고, 먼 곳으로 유배를 가기도 했어요. 일식 시간을 못 맞춘 천문관을 벌 줄 만큼 조선의 왕들은 왜 하늘의 변화에 관심이 많았을까요?임금은 하늘을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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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9
08-28
5
조선의 하늘을 관측하라, 간의와 규표
별의 위치를 측정하는 간의는 세종의 명령으로 이천과 장영실이 만들었어요. 장영실은 명에 있던 간의를 연구하기 위해 중국 베이징을 다녀오기도 했어요. 간의는 우리나라에 맞는 달력을 만들기 위해 반드시 필요했는데, 매우 정교하게 만들어야 했거든요.간의대와 간의, 규표 복원 모습충북대학교 한국천문연구원완성된 간의를 설치하기 위해 경복궁에는 간의대를 만들었어요. 간의대는 지금의 천문대와 같은 역할을 했지요. 간의대가 완성되자 천문관들은 매일 밤 간의대에 올라 별의 위치를 측정했어요. 낮에는 규표를 이용해 해의 높이를 측정했지요. 간의는 먼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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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6
08-28
4
자연의 질서 속에서 시간을 찾은 앙부일구
세종은 해와 별의 움직임을 측정해 정확한 시계를 만들고 이 시계의 보급에도 힘을 썼어요. 해의 움직임을 관측해 만든 것이 해시계에요. 지구는 하루에 한 바퀴씩 자전을 해요. 자전 때문에 해와 별은 360도 원운동을 하는 것처럼 보이지요. 해와 별이 15도만큼 이동한 것을 관측하면 24시각을 쓰는 지금의 1시각을 정할 수 있어요.조선은 24시가 아니라 12시각을 사용했으니 30도만큼 이동한 값으로 1시각을 정했지요. 12시각을 나누는 기준은 하루 중 해가 가장 높게 떴을 때를 측정해 정했어요.세종은 간의대 옆에 규표를 만들어 해가 가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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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6
08-28
3
표준 시계 역할을 한 자격루
정확하게 시각을 알려주던 앙부일구에는 치명적인 약점이 있었어요. 햇빛이 없는 흐린 날, 비가 오는 날, 그리고 밤에는 시각을 알 수 없다는 것이죠. 그래서 조선을 세운 이성계도 해시계가 아닌 이전부터 내려오던 물시계를 만들어 한양 도성의 백성들에게 시간을 알리게 했어요. 물시계가 모든 시계의 기준 역할을 한 것이지요.물을 같은 속도, 같은 양으로 흐르게 해 물의 양을 측정하면 물시계를 만들 수 있었어요. 하지만 물시계는 기계장치가 정밀해야 시각의 오차를 줄일 수 있었어요. 게다가 물시계를 지키는 사람이 실수를 해 시간을 알리지 않으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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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6
08-28
2
1각이라도 시간을 허투루 잴 수 없다! 일성정시의
자격루는 매우 정밀했지만 장치가 매우 복잡하고 이동이 불가능했어요. 제작비용도 많이 들었지요. 게다가 기계 장치가 고장이라도 나면 도성에 큰 소동이 날 수도 있었어요. 앙부일구는 밤에 사용할 수 없었고요. 세종은 낮이나 밤에 상관없이 간편하고 안전하게 시간을 측정할 수 있는 시계를 고민했어요.그래서 세종은 학자들과 함께 간의와 자격루, 앙부일구에 이어 이번에는 일성정시의를 만들었어요. 일성정시의는 낮 시간을 재는 해시계와 밤 시간을 재는 별시계의 원리를 이용해 만들었어요. 즉 해와 별이 북극성을 중심으로 하루에 1바퀴씩 도는 거리를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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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4
08-28
1
역사 속 작은 이야기: 비의 양을 측정하라, 측우기
“나라는 백성을 근본으로 삼고, 백성은 먹을 것을 하늘로 삼는다. 농사는 생계의 근원이므로 임금의 일에서 제일 우선해야 한다.”세종은 늘 농사를 중요시 했어요. 세종이 하늘을 관측하고, 정확한 달력과 시계를 만들고자 했던 이유도 농사와 관련이 많아요. 농사에서는 비의 양을 측정하는 일도 매우 중요했어요. 비의 양에 따라 한 해 농사의 수확량이 정해지기 때문이지요. 가뭄이 들거나 홍수가 나면 곡식 생산량이 줄어들어 백성들은 큰 어려움을 겪었야만 했어요.조선에 가뭄이 계속되던 어느 날이었어요. 세종의 맏아들 이향(문종)이 땅을 파며 골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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