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홍집

을미개혁을 추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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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5년 일본이 명성왕후를 시해한 을미사변이 일어났어요. 일본의 포학무도함에 대한 백성들의 분노는 높아져 갔고, 서구 열강들의 비난도 거세졌지요.


국내 사정이 매우 좋지 않았지만, 김홍집은 개혁의 고삐를 늦추지 않고 더욱 힘을 쏟았어요. 이때가 1895년 을미년이었기 때문에 이를 ‘을미개혁’이라고 해요.

김홍집 내각은 교육이 개화의 근본이라고 생각하였어요. 이어 나라가 부강해지려면 근대적 학문을 가르치고 배우는 근대식 교육 기관 설립이 중요하다고 판단하였지요. 그리하여 우선 경성 안에 근대적 소학교를 세워 아동을 교육하는 데 힘쓰도록 하였어요.


또한 김홍집 내각은 1895년 11월 17일(양력 1896년 1월 1일)부터 태양력을 사용한다고 선포하였어요. 또한 단발령(斷髮令)을 시행한다고 전 국민에게 공표하였어요. 실제 고종은 백성들에게 모범을 보이기 위해 세자와 함께 머리카락을 자른 뒤 양복을 입고 조정에 나아갔어요.


단발령은 성인 남성을 대상으로 상투를 자르고 머리를 짧게 깎도록 한 명령이에요. 조선 사람들에게 신체는 부모에게 물려받은 것이므로 함부로 훼손해서는 안 된다는 유교적 사상이 굳게 자리 잡고 있었어요. 당시 사람들은 단발령이 부모에 대한 불효이자 그동안 지켜온 전통 사회를 무너뜨리는 것이라 생각했지요.


유학자 최익현도 단발을 강요하려고 하자 “내 목을 자를지언정, 내 머리카락은 자를 수 없다.”고 하며 거부하였지요.


하지만 조선 정부는 사람들의 거센 반발에도 단발령을 강력히 밀고 나갔어요. 이미 백성들은 을미사변으로 격앙되어 있었는데, 여기에 단발령 강행은 민심을 극도로 나쁘게 만들었지요. 마침내 백성들의 반일, 반정부 감정은 폭발하였고, 대규모 항일의병운동으로까지 번지게 되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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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발령 시행 모습

숭실대학교 한국기독교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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