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에서의 길고 긴 망명 생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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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옥균에게 일본은 그리 낯선 곳은 아니었어요. 두 차례에 걸쳐 일본을 방문했던 경험이 있었거든요. 일본에 도착한 직후 얼마간은 일본인의 집에 머물 수 있었어요. 그러나 얼마 후 셋집을 얻어 나올 수밖에 없었고, 한 해 두 해가 흐르면서 10년이나 살게 되었답니다.
일본 정부도 점차 김옥균이 일본에 와서 사는 것을 반기지 않았어요. 심지어는 조선, 청과의 외교에 방해가 된다며 남쪽과 북쪽에 있는 섬으로 각각 유배를 보내기도 했어요. 4년간의 유배 생활을 마치고 다시 도쿄로 돌아온 김옥균은 1894년 상하이로 망명했어요. 청의 권력자를 만나 조선과 일본, 중국 세 나라가 힘을 합쳐 서양 세력에 맞서야 한다는 생각을 전달하기 위해서였죠. 그러나 뜻을 이루지 못하고 오히려 홍종우가 쏜 총에 맞아 죽임을 당했어요. 실은 홍종우는 김옥균을 암살하기 위해 조선 정부가 보낸 사람이었어요.
김옥균은 갑신정변을 통해 청의 간섭에서 벗어난 자주독립 국가를 만들고자 했어요. 또 개혁안의 내용 중에는 당시 조선의 백성들의 입장에서 보면 상당히 매력적인 내용을 담고 있었어요. 하지만 김옥균을 포함한 개화당의 개혁안은 백성들의 큰 지지를 받지 못하고 실패로 끝나게 되죠. 그 이유는 뭘까요? 아마도 충분히 준비하지 못한 상황 속에서 일본의 군사력에 너무 의존해서 개혁을 추진했기 때문인 것 같아요. 김옥균을 비롯한 개화당이 일으킨 갑신정변이 성공했다면 조선의 근대 국가 수립에 어떤 영향을 주었을까요?

갑신정변의 주역 : 왼쪽부터 박영효·서광범·서재필·김옥균
독립기념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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