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원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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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열단을 조직해 투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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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9년 온 민족이 참여한 3·1 운동이 일어났어요. 참으로 가슴 벅찬 일이었지요. 하지만 비폭력 원칙에 따라 펼쳐진 만세운동을 일제는 총과 칼로 무자비하게 탄압했어요. 그들의 총칼에 어른이나 아이 할 것 없이 죽어 나가고 많은 사람이 감옥에 갇히게 되었지요.


이 소식을 접한 김원봉은 평화적인 방법으로만은 독립을 이룰 수 없다고 생각했어요. 그는 만주에 있던 신흥무관학교에 입학해 군사훈련을 받으며 본격적인 독립항쟁을 펼칠 준비를 해나갔어요.


“우리도 이제 무력으로 투쟁합시다. 비밀 조직을 만들어서 정의로운 일을 맹렬히 실행합시다.”


1919년 11월, 그는 신흥무관학교 출신 사람들과 뜻을 모아 만주 땅에서 의열단을 조직했어요. 처음에 13명으로 시작했는데, 단원의 수는 점점 늘어 70여 명까지 되었어요.

김원봉을 비롯한 의열단 단원들은 자신의 목숨을 바쳐서라도 나라의 독립을 앞당기는 데 힘을 보태려 했어요. 조선총독부, 경찰서 등 일제의 식민 통치 기관에 폭탄을 던지고, 일본 주요 인물과 경찰, 군인 등을 처단하기 위한 작전을 준비했어요. 김원봉은 직접 폭탄을 만들고, 성능 좋은 폭탄을 외국에서 들여오기도 했지요.


의열단 단원들의 생활은 어땠을까요? 큰일을 앞둔 사람들이니 늘 긴장하고 살았을 것 같다고요? 꼭 그렇지만은 않았어요. 사격 연습을 하고 의거를 준비하는 등 큰일을 앞둔 사람들답게 진지했어요. 하지만 수영과 테니스 등 운동을 하며 가장 좋은 몸 상태를 만들었지요. 그러면서 마음의 여유를 갖기 위해 오락을 즐기며 명랑하게 생활했어요.


무엇보다 의열단 단원들은 사진 찍기를 무척 좋아했어요. 사진 찍을 때면 항상 양복을 갖춰 입고, 머리 모양도 깔끔하게 정리했어요. 마지막 사진이 될 수도 있으니 말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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