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원봉, 광복 이후 북으로 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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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5년 광복을 맞이하자 나라 밖에 있던 독립운동가들이 하나, 둘 조국으로 돌아왔어요. 김원봉도 들어와 통일된 정부를 세우자고 주장했어요.
하지만 그는 임시 정부의 주석 김구 다음으로 중요한 인물이었지만 이에 걸맞는 대접을 받지 못했어요. 그의 행동을 못마땅하게 여긴 사람들도 있었어요. 결국 그는 공산주의의 우두머리로 몰려 친일파였던 경찰에게 체포되어 뺨을 맞고 고문까지 받았어요.
“내가 일본 놈들에게도 당하지 않은 수모를 광복을 맞이한 후 친일파 경찰에게 당하다니…”
김원봉은 그날 이후 3일 내내 통곡을 했다고 해요. 이후 자신을 노리는 사람들로 인해 불안감을 느끼며 살아야 했지요. 그러던 중 김구와 함께 북한으로 가 김일성을 만나 통일 정부를 세우기 위해 남북 협상을 벌였어요.
하지만 남쪽에서 남한만의 단독정부를 세우려는 움직임이 있자, 김원봉은 돌아오지 않고 북에 남게 되었어요. 이후 북한에서 중요한 역할을 맡으며 정치 활동을 했지요. 그러던 중 1958년쯤 갑자기 죽음을 맞이했어요. 그가 왜 죽었는지 정확히 알려진 것은 없어요. 김일성과 다른 입장을 가져 제거된 것으로 추측하고 있어요.
김원봉은 일제강점기 열렬히 독립운동을 펼친 사람이지만, 남과 북 어디에서도 인정받지 못했어요. 남한에서는 독립운동가들에게 주는 훈장도 받지 못했고, 북한에서도 대우받지 못했지요.
요즘들어 김원봉의 활동이 일반 사람들에게도 알려지고 있어요. 그러면서 그의 공을 인정해 주어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어요. 우리도 김원봉처럼 모든 것을 걸고, 독립운동을 했지만 잊혀져야만 했던 사람들을 제대로 기억해야 하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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