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원봉

조선의용대를 만들고, 한국광복군 부사령관이 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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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열단의 활동은 사람들로부터 큰 박수를 받았고, 독립의 희망을 불어넣었지요. 하지만 암살과 파괴만으로는 독립을 앞당길 수 없었어요. 많은 의열단 단원이 체포되어 희생되기도 했지요. 김원봉은 다른 방향을 고민해야만 했어요.


“이제는 대규모의 조직적인 투쟁을 준비해야 하겠군.”

1926년 김원봉은 황푸군관학교에 들어가 체계적인 군사 훈련을 받았어요. 중국 국민당 정부 사람들 등 많은 사람도 만나게 되었지요. 그러면서 조직적인 군대를 만들어 무장 투쟁을 할 궁리를 했어요. 이후 그는 의열단을 조선민족혁명당으로 발전시켰어요. 그리고 중국 국민당 정부의 도움을 받아 조선인혁명간부학교를 세워 청년들을 독립운동가로 길러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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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용대(깃발 가운데 서 있는 사람이 김원봉)와 조선의용대 창설 당시의 김원봉

독립기념관


1937년 일본이 중일전쟁을 일으켰어요. 김원봉은 다음 해 조선의용대를 만들었어요. 조선의용대는 중국 국민당 정부로부터 동의를 얻어 만든 군대예요. 사실 다른 나라에서 군대를 만든다는 것은 특별한 일이었어요. 군대가 만들어지자 우리 청년들이 하나둘 모여들어 그 수가 300여 명이나 되었지요.

중국 국민당 정부는 본토 깊숙이 쳐들어오는 일본에 맞서는 데 조선의용대의 도움을 받았어요. 이들은 주로 전투보다는 포로 심문, 군사 문서 번역, 선전 활동 등을 통해 일본에 타격을 주었어요. 조선의용대에는 중국어와 일본어를 잘하는 사람들이 많았거든요.


하지만 조선의용대는 훗날 둘로 나뉘었어요. 일부 대원들은 김원봉을 따라 대한민국 임시 정부가 만든 한국광복군에 들어갔어요. 그 덕분에 한국광복군은 전투력이 훨씬 강해졌지요. 나머지 대원들은 사회주의 계열 조직의 부대가 되었어요. 김원봉은 대한민국 임시 정부의 군무부장(지금의 국방부 장관)과 한국광복군 부사령관이 되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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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산 김원봉의 모습

독립기념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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